• ‘민생탐방’이란 이름의 웃기는 쇼

      여야를 막론하고 민생탐방이란 이벤트가 유행이다. 국민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서민(서민이란 신분제 시대 같은 용어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나)’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의 여망이 과연 뭔지를 알아보겠다는 충심이야 물론 나무랄 게 없다.

      그러나 그게 좀 우스워 보인다. 재래시장엘 들러 장사하는 아줌마들과 악수를 나누며 파는 음식들을 지검지검 먹어보고, 공장엘 찾아가 근로자들이 조립하는 제품을 만지작리며 뭐라 뭐라 말을 붙여보고, 공사 현장엘 가서는 화이바를 뒤집어쓰고 왔다 갔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괜히 먼 곳을 가리켜 보이고. 그러면서 “집권하면 지금 하신 말씀을 잘 반영해서..." 어쩌고 한 마디 건네고... 하는 건데, 이게 어째 너무 상투적이고 식상할 지경이다. TV 뉴스랍시고 시청은 하지만 뉴스랄 것도 없다.

      그러나 대중 차원에서는 얼굴을 자꾸 비치면 비칠수록, 발품을 팔면 팔수록 그만큼 좋은 효과가 돌아오더라 하는 경험법칙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이게 대중민주주의의 한 측면일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대중민주주의가 정치의 엔터테인먼트화(化)를 통해 정치의 무의미성을 촉진하는 측면도 알고는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도대체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정치인 아닌 ‘연예 스타 지망생’들이 시장바닥을 휘젓고 다니며 헤헤헤 하하하 호호호 한대서, 그리고 대중 시청자들이 그들의 손을 잡아보고 “나 오늘 아무개와 악수 했어” 하고 화제를 삼는대서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정치가 고작 그건가? 그걸로 표를 주고 안 주고 한대서야 그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북이 핵무기-미사일 협박을 하는 마당에 우리 정치 참 한없이 허망하다.

      그렇다고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도 인간 속세에선 가능하지 않다. 이래저래 완전한 정치란 손에 잡힐 신기루가 아니다. 다만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시장판 대중정치 쇼는 그것대로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인들 사이, 정치세력 사이의 논쟁다운 논쟁을 따로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대중 쇼에 너무 치중하는 나머지 논쟁다운 논쟁 구경을 좀처럼 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논쟁다운 논쟁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사활적 운명에 관한 본질적인 이슈를 거론하는 논쟁이다. 좌파연대는 이에 관한 자기들의 궁극적인 속내를 숨기려 하고, 새누리당은 그 속내를 알고서도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그런 논쟁을 애써 회피하려 한다.

      결국 오늘의 한국 대중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로 간 셈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급속히 뒤흔들리고 있다. 이걸 누가 무슨 수로 다잡을 수 있을지, 머라꼬 말할 방뻡이 없네!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