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경선 룰’의 추억>

    시비(是非)를 가리고 싶은 욕망을 절제할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권 도전 선언과 함께 제기한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룰의 ‘역사’에 관해. 단, 이글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대해선 일말의 고려도 없음을 천명한다. 감히 사관(史官)의 엄숙한 자세로.

    불과 5년 전. 이명박·박근혜의 경선 과정에서 경선 룰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기록으로 남게 됐는지, 추억해 보면 시비는 간단히 가릴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당헌당규 개정은 박근혜가 당대표로 있던 시절 다름 아닌 친이계 홍준표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홍준표는 한나라당 안에서 가장 먼저 이명박 대망론을 주창했던 인물. 그의 손과, 수 십 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당헌당규가 손질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당헌당규. 그러나 다시 박근혜보다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았던 이명박 진영이 본격적인 경선에 앞서 경선 룰을 개정해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함으로써 경선은 평지풍파-한나라당의 경선이 쨍하고 깨쳐버릴 위기에 직면!

    박근혜 진영은 경선 룰을 포함한 당헌당규 개정이 홍준표에 의해 주도됐고 공청회를 거쳤던 사실을 들어 경선 룰 개정 불가로 맞섰다. 저러다가 지지도가 높은 MB가 당을 뛰쳐나가 분당(分黨)하는 건 아닌지.
    이런 와중에서 경선 관리를 주도했던 당대표 강재섭의 중재안이 나온다. 중재안은 대의원 20%, 일반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 강재섭의 중재안은 여론조사에서 MB에게 뒤졌던 친박계에 충격!

    원래 강재섭이 당대표가 된 배경엔 당을 장악했던 친박계의 지원이 작용했기 때문인데, 강재섭이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20%로 내놓았다? 강재섭의 노련한 줄바꾸기!

    MB는 전격 수용한다. 친박계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결국 강재섭 경선 룰대로 경선이 치러져 MB는 당심(黨心)에선 지고, 여론조사에서 이김으로써 대선후보 티킷을 움켜쥐게 됐다. 지금 새누리당의 경선 룰이 바로 강재섭 중재안이다.

    사실 강재섭은 MB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데 1등 공신! 이를 반드시 역사에 기록하고 싶다. MB가 대통령이 되면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으로 예견됐었다.

    그러나? 참으로 정치는 내일을 알 수 없을 만큼 묘하게도 변덕스럽다. 다음해,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피튀기는 공천 싸움을 벌이면서 강재섭의 지역구인 대구에서 박근혜 열풍이 태풍처럼 불기 시작했다. 박근혜한테 고무신 거꾸로 신은 강재섭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 총선에만 나와 봐라.

    친박계들의 공천 탈락에 박근혜의 한마디, “살아서 돌아오라.” 이 정서만으로 결성된 친박연대의 홍사덕.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재섭의 대구 지역구에서 기습적으로 출마선언! 대구 민심이 폭발하다시피 했다. 홍사덕의 일격에 강재섭은 불출마 선언! 총선에 출마하느니 차라리 정치적 자존심을 지켜 미래를 도모하려면 홍사덕과의 대결을 피해야 했다.

    한마디로 친이·친박계 갈등의 뿌리, 시작은 경선 룰이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5년 전 손학규가 경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된 근본 배경도 경선 룰에 대한 불만. 손학규는 기존의 경선 룰로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창-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대의원, 당원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뽑자는 것. 이명박도, 박근혜도 받아들 일 수 없는 카드였다. 그래서 손학규가 탈당한다.  

    분명히 말하고 싶다. 김문수의 경선 룰 개정 주장-완전국민경선제에 아직은 동의할 수 없다고. 왜? 시대의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시대가 어떻게 바뀌었기에 경선 룰을 바꿔야한다는 것인지, 군색하게 들린다.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SNS시대가 된 게 시대 변화라고? 그런 것 갖고 대선후보 뽑는 게 시대 변화? 자기네들 대선후보를 ‘국민’보고 뽑아 달라는 게 적어도 상식 차원에만 볼 때 합리적인가! 여론조사만으로 대선후보 뽑을 것 같으면 선거는 왜 하나!

    정당의 대선후보를 당원이나 대의원이 완전 배제된 가운데 이른바 ‘국민’이 뽑는다면 왜 정당이 필요한가! 정당과 정당정치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논리!

    족구하던 선수들이 축구하는 상황이 되니, 심판들을 운동장에서 내쫓고 관중들이 심판해 우승 후보 가리라는 억지처럼 들린다.

    김문수, 당당하게 다른 카드로 승부 걸라. 그래야 국민이 감동해 돌파구가 열린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