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제주해협을 主敵에게 열어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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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창 부친의 일제 경력 공격했다가 逆風 맞아
     
      鄭東泳(정동영) 민통당 상임고문은 4.11 총선 때 서울에서 출마, 한미 FTA 主役(주역)인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크게 졌다. 지난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부친의 친일의혹을 제기했다가 17대 대선에서 오히려 鄭 고문 부친의 친일행적으로 곤욕을 치렀다. 鄭 고문은 2002년 2월28일 ‘日帝(일제)잔재 청산 등을 위한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을 통해 “일제하에서 15년 간이나 총독부 검찰서기로 근무한 이회창 총재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해 이 총재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국민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었다.
      그는 특히 언론보도 내용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회창 총재 부친은 ‘마루야마’로 창씨를 개명하고 집에서도 오직 일본말만을 사용토록 했다고 한다. 창씨를 개명하고 조선총독부 검사보를 거쳐 검사임용시험에 합격한 것은 명백한 친일행위다. 조선총독부가 무수히 많은 독립투사를 구금하고 고문한 일제의 첨병이었음을 기억할 때 이회창 총재 부친이 어떤 일을 했는지 분명하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민족의 정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기구에서 온갖 영화를 누렸고 군사정권 하에서는 그릇된 판결을 했으며,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이회창 총재는 부친의 친일행적과 일제잔재 청산에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처럼 이회창 부친의 친일의혹을 제기했던 鄭 고문은 17대 대선에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선 뒤인 2007년 10월30일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역공을 받았다.
      당시 차 의원은 “鄭 후보의 아버지 鄭鎭徹(정진철)씨는 일제 말기 금융조합에 들어가 해방될 때까지 근무했다”며 “일제통치하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금융조합에 들어간 것은 일제하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鄭鎭徹씨가 금융조합서기로 근무하던 시기는 농민의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했으며, 한반도 産出米(산출미)의 60%이상이 공출로 수탈됐던 일본 제국주의의 가혹한 착취가 기승을 부렸던 때”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鄭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에 대해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역사에 대한 관점’이라고 말했다”며 “이제는 鄭 후보가 국민의 이 같은 검증을 받아야 할 때”라고 했다. 
      
      鄭 고문 부친의 친일의혹은 <월간조선>이 2004년 10월호에서 자세하게 다룬 적이 있다. 당시 月朝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鄭 고문의 숙부 鄭鎭燁(정진엽)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부친 鄭鎭徹씨가 고교를 졸업하기 전 실습차 구림면 금융조합에서 일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정식 직원이 됐다고 밝혔다. 鄭 고문의 부친은 금융조합 서기로 해방 직전까지 4~5년 근무했고,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일하다가 미군정 시절 관선 면장이 됐다. 6.25전쟁 당시에는 면장 출신임에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좌익)부역 혐의자로 국군 11사단 정보과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鄭 고문의 부친은 軍의 조사를 받은 후 풀려난 뒤, 대한청년단 순창군 구림면 단장을 맡으면서 국군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정 고문의 堂叔(당숙)인 鄭鎭浩(정진호, 독립운동가)씨는 6.25전쟁 기간 중 좌익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일제시대 금융조합은 朝鮮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일본으로 공출하는 농민착취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정동영이 자랑하는 제주해협 개방의 진실
     
      정동영 민통당 상임고문은 NSC 상임의장이었던 2005년 주변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북한상선의 제주해협 통과를 강행한 바 있다. 鄭 고문이 2007년 펴낸《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에는 자신이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북한상선 제주해협 통과’를 강행했다는 自述(자술)이 나온다.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장관급회담 합의를 앞두고 부처 간 회의가 열렸을 때 북측의 제주해협 통과 문제에 관해 참석자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안보적 관행으로 통과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국방당국의 입장이 완강하다는 이유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반대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쿠바 국적의 선박도 이라크 국적의 선박도 제주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데 유독 북한 국적의 선박만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중략) 실무 당국자 수준에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해군 출신인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다행스럽게도 윤 장관은 제주해협은 제3국 선박에도 無害(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지역인 만큼 북측 상선에 대해서도 동등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위와 같은 鄭 고문의 주장과 달리 2007년 10월 소말리아 해적을 제압했던 북한의 ‘대홍단號(호)’는 제주해협을 통과하는 북한선박의 실체(實體)를 확인해 줬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피랍된 대홍단호 승무원들은 숨겨놓은 화기를 꺼내 해적들에게 역습을 가한 뒤 배를 탈환했다. 화물선 승무원들이 기관총·로켓발사기 등으로 중무장한 해적들을 향해 무기를 들고 제압한 사실은 북한 상선이 사실상 군함임을 입증한 것이다.
     
      정보당국자들 역시 “북한 해운성 소속 선원들은 상당수가 현역 해군이거나 10년 이상 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며, 북한 배는 火器(화기)로 무장한다”고 말한다. 武器(무기)를 가진 軍人(군인)이 타는 배라는 지적이다. 사전적으로 군함은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모든 배’를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는 “상선(商船)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 간첩수송·인질납치 및 마약·무기·위조담배 등을 밀수출하는 일도 이른바 북한상선이 맡고 있다.
      1983년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북한공작원을 미얀마로 수송한 선박도 북한상선이었다. 1978년 영화감독 신상옥·최은희 부부를 홍콩에서 북한으로 납치한 선박도 역시 북한상선이었다. 대홍단호는 해적을 제압할 정도의 군사력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비정부단체인 ‘항해사 지원 프로그램’ 케냐 지부는 대홍단호와 관련해 AFP와의 인터뷰에서 화물선으로 보기 어려운 의문점을 제시하며 “美해군은 이 배와 선원들을 억류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AFP에서 언급된 대홍단호의 ‘의심스러운 활동’은 미사일 밀수출 등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많다. 홍해 상에서 소말리아와 마주하고 있는 국가는 예멘이다. 과거 북한의 서산호는 예멘에 스커드 미사일을 밀수출하려다 스페인 해군에게 적발 당한 바 있다.
     
      해경 검색 불응, 제주해협 무사통과
     
      군함인지 상선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북한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는 2010년 우리 정부가 천안함 폭침 후 이를 불허하기 전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대홍단호의 경우 2007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제주해협을 통과했었다. 2006년 10월29일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이 해경(海警)에서 제출 받은 <해경-북한 선박 간 통신자료>에 따르면, 북한 연풍호가 2006년 2월2일 해경 소속 제주302함의 호출에 응답하지 않고 제주해협을 지나가는 등 2006년에만 북한 선박이 통신검색에 응하지 않고 우리 측 영해를 통과한 것이 22차례나 됐다.
     2005년 8월 발효된 남북해운합의서는 제3조 1항에 ‘운항 선박은 상대 측 경비함정과 통신초소의 호출 시 응답하여야 한다’고 돼 있고, 부속합의서 제2조 8항에는 ‘통신에 응하지 않은 선박에 대하여 해당 선박을 정지시켜 승선·검색하여 위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즉 북한선박은 남북해운합의서를 명시적으로 위반했던 것이다.
     
      核물질·시설·자재 등 제주해협 통과 의혹
     
      한나라당의 송영선 의원은 북한이 핵실험을 위한 자재·설비·核물질 등을 제주해협을 통해 운송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宋의원은 2006년 10월10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를 통해 “2005년 8월15일부터 1년간 제주해협을 통과한 소위 북한상선 가운데 2006년 10월 핵실험 실시 장소와 가까운 김책 항을 드나든 선박이 24척이었다”며 “이 가운데 인천으로 전기아연괴를 수송한 11척을 제외한 13척은 북한 내 동부와 서부를 왕래하면서 核물질과 시설·장비 등을 운반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나라당의 김형오 의원은 2006년 11월24일 “PSI관련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국정원이 제주 해협을 통과하는 북한의 의심선박 20척을 관계부처에 통보했음에도 조사·검사를 하지 않고 통과했다”면서 나포·검색 등 실효성 있는 제재방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안함 폭침 주장을 우격다짐이라고 비방
     
      정동영 씨는 2011년 6월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아니면 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태도는 우격다짐일 뿐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지 않다. 국제사회도 이걸 100% 뒷받침한다. 유엔안보리에서도 ‘북한 말도 맞고 남한 말도 맞다’는, 이런 식의 결과를 내놓은 것은 명백한 외교적 실패이다. 천안함에 대해 의심을 가지면 친북좌파다 하고 非이성적이고 감정적 태도를 정부가 보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북한의 어뢰 추진체가 북한 소행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믿는다는 국민보다 더 많아졌지 않느냐. 그렇다고 보면 정부에 행정적인 책임이 있다.”
      이런 사람이 李明博 대신 대통령 자리에 있었더라면 북한군이 남침, 서울을 포위하더라도 "우리 軍이 남침을 유도한 게 아닌지 조사해보고 대응하겠다. 남침이니 맞서 싸우라는 일부 국민들의 주장은 우격다짐이다"고 말할 것이다.
      천안함 폭침을 믿지 않는 이는 바보이거나 반역자이다. 어느 쪽이든 교육과 치료 대상이고, 公職엔 맞지 않다. "정부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믿는다는 국민보다 더 많아졌지 않느냐"는 그의 발언도 문제이다. 그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북한 노동당에서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정동영 언급 중 ‘사실’인 부분은 딱 하나뿐”

     
      <중앙일보> 허진 기자는 2011년 12월1일字 칼럼에서 정동영 의원이 지난달 29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FTA를 막은 실제 사례’라며 에콰도르의 예를 든 것을 지적했다. 정동영은 “에콰도르는 국민적 저항이 폭발하면서 루시오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축출되고 새로 등장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결국 국민 앞에 굴복해 (비준된) FTA를 ‘파기’했다. 에콰도르도 했는데 한국 국민이 못해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허 기자는 “정 최고위원의 언급 중 ‘사실’인 부분은 구티에레스 대통령이 물러난 것 딱 하나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선 에콰도르와 미국은 FTA를 비준한 일이 없다. FTA가 비준도 되지 않았는데 그것의 ‘파기’를 위해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국민이 들고일어날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국민이 대통령을 축출시키나. 한마디로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며 정동영의 발언을 비판했다.
      허 기자는 “두 나라가 FTA 협상을 벌였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그건 에콰도르가 아닌 미국의 선택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은 에콰도르 정부가 미국 석유회사 옥시덴털과의 사업계약을 취소하고 이 회사 자산을 압류한 것에 항의해 2006년 5월 에콰도르와의 FTA 협상을 중단한 바 있다.
      그는 “에콰도르의 새 대통령이 국민의 압력을 받아 비준된 FTA를 파기한 게 아니다”라며 “그는 자신을 부패 혐의로 탄핵하려 했던 대법관 27명을 면직한 게 국민적 저항을 불러 물러나야 했다”고 실제 사퇴 배경을 밝혔다. 허 기자는 정동영이 대통령 후보와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것을 언급하며 “비중 있는 정치인이 트위터에 올라온 ‘확인 안 된 사실’, 아니 거짓을 동료 의원들에게로 퍼 나르고 있었던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정동영 의원은 2011년 11월3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실시해 뼛속까지 親美인 대통령과 통상관료가 어떻게 國益을 팔아먹었는지 국민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내가 에콰도르 괴담을 유포했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사실을 말하자면 에콰도르가 미국과 FTA 추진 중에 민중봉기로 미국 석유회사가 가진 유전이 국유화되면서 협상이 파기됐다. 협정 중단이 아니라 파기된 것이고, 그 언저리에 대통령이 축출돼 퇴진됐다. 괴담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를 향한 비판과 증오는 환영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재차 강조했다.
      정동영은 인터뷰에서 ‘美ㆍ에콰도르 FTA’ 협상이 중단된 것이 에콰도르의 美 석유회사 자산 압류 때문이란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에콰도르 대통령 축출 원인이 FTA가 아닌 ‘대법관 免職(면직)’ 때문이란 것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