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단체 숙원 통진(13석), 대선연대 무기로 <7석 + 더 왼쪽 정책> 가능성 높다
  • 지난 11일 선거에서 ‘두통연대’를 구성한 민통당과 통진당은 결국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두통연대 실패론’에 대한 갖가지 분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통진당의 ‘교섭단체’ 구성 실패 또한 좌파에서는 화젯거리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15년 전 DJ와 JP가 실행에 옮겼던 사례가 있다.

    97년 대선에서 DJ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DJP 연합’

    1997년 12월 대선은 외환위기로 인해 야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았다. 특히 국회 의석이 79석에 불과했던 DJ의 ‘새정치국민회의’는 당시 거대여당인 ‘신한국당’을 이기는 게 쉬워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걱정을 하던 DJ에게 측근이 새로운 전략을 내놓는다. 바로 JP와의 공조였다.

    당시 DJ의 정책참모기구였던 아태재단 상임고문 이강래 前의원은 “호남 고립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JP의 자민련과 연합해야 한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올린다. DJ는 이를 적극 수용해 1996년 중반부터 JP에 협조제안을 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두 정당의 정책기조가 상반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태재단은 영국의 거국내각, 독일의 신호등 연정 등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 ▲ DJP연합을 만들 때의 DJ와 JP. DJ는 JP에게 책임총리와 16대 국회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않았다.
    ▲ DJP연합을 만들 때의 DJ와 JP. DJ는 JP에게 책임총리와 16대 국회 내각제 개헌을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않았다.

    DJ의 연합 제안에 JP가 이끌던 자민련 내의 반발은 심했다. JP가 이끈다고 하나 자민련 내에는 당시 충청계, TK민정계, 중립계 등의 계파가 있었다. 충청계는 김용환 부총재가, TK 민정계는 박철언 의원이, 중립계는 한영수 부총재가 이끌고 있었다.

    충청계와 중립계는 DJP연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5~6공 시절 권력을 맛본 TK민정계는 DJP연합을 적극 지지했다.

    이때 마침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이 DJ비자금 사건을 터뜨리면서 DJ는 ‘코너’에 몰리게 된다. DJ는 생존을 위해 JP에게 크게 양보를 한다.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대가로 DJ는 대통령, JP는 총리를 맡기로 하고, 16대 국회에서 내각제 실시를 약속한 것이다. 경제 관련 장관도 총리가 뽑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각제를 실시하면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총리가 맡아 할 것이기에 JP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결국 JP는 충청표를 DJ에게 몰아주기로 하고 DJP연합에 합의한다. 여기에 97년 8월 박태준 전 최고위원이 자민련에 합류하면서 그 파괴력은 엄청나진다. 충청은 물론 대구․경북지역까지 DJ의 영향권에 들게 된 것이다.

    DJ는 이를 통해 ‘색깔론’을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호남을 벗어난 전국적인 지도자로 떠올랐다. 특히 ‘캐스팅보트’와 같은 힘을 발휘하던 충청권 표를 얻게 되면서 대선 구도에서 최강자가 됐다. DJP연합은 97년 8월 이렇게 탄생했다.

    DJP연합의 파워는 엄청났다. 97년 12월 선거에서 DJ는 1,032만 표를 얻어 제15대 대통령이 됐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14%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16대 총선 후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려 ‘의원 꿔주기’

    DJ가 대통령이 된 지 2년이 지난 후 치러진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이름을 바꾼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얻었다. 자민련은 17석을 얻어 교섭단체를 꾸리지 못했다.

    반면 당시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은 133석을 얻어 1당이 됐다. 133 : 132로 DJP연합을 합쳐도 한나라당보다 1석이 모자랐다. DJ와 여당 입장에서는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이 반드시 필요하게 됐다.

    국회에서 의석수가 모자라더라도 교섭단체로 2:1이 되면 각종 위원회 구성이나 의정 운영 등에서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DJP연합은 2000년 초유의 ‘의원 꿔주기’를 기획한다.

    2000년 12월 30일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던 송석찬, 배기선, 송영진 의원이 자민련에 입당한다. 이때 당을 옮긴 세 의원은 “자발적인 탈당 및 입당이다”라고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렇게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는 듯했고, DJP연합도 계속 이어진다.

  • ▲ 2001년 1월 2일 '동아일보' 기사. 당시 자민련 강창희 부총재가 DJP연합의 '의원 꿔주기'에 반발하다 제명당했다. 강창희 의원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됐다.
    ▲ 2001년 1월 2일 '동아일보' 기사. 당시 자민련 강창희 부총재가 DJP연합의 '의원 꿔주기'에 반발하다 제명당했다. 강창희 의원은 이번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됐다.

    한편 이 같은 ‘어거지’에 반대하며 교섭단체 구성에 반대하던 당시 자민련 소속 강창희 의원은 결국 당에서 ‘제명’ 당하기에 이른다. DJP연합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연대를 하다 DJ가 16대 총선 이후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자 공조를 파기하고, JP와 자민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통민당과 진통당, ‘두통연대’는 DJP 따라할까?

    DJP연합의 ‘의원 임대차 계약’을 본 국민들은 황당해 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둘을 합쳐도 하나를 이기지 못하게 된 ‘두통연대’는 어떨까.

    지금 당장에는 별 다른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두통연대’의 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도세력들’ 입장에서는 DJP연합의 ‘꼼수’에 큰 유혹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DJP연합 당시의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과 같은 연합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당시 DJ는 좌우 합작을 통해 자신을 ‘비토’하는 세력들을 흡수해 지지기반을 확대한 것이지만, 민통당과 통진당의 경우에는 그 ‘진도’만 다를 뿐 모두 왼쪽이라 지지기반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교섭단체 구성’을 총선 최대의 목표로 잡았던 통진당과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 입장에서는 ‘의원 꿔오기’가 매우 시급한 문제다. 통진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해 ‘환경노동위’ 하나만 맡아도 민노총이나 전교조 등의 단체에 대한 ‘합법적 지원’이 매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여기다 통진당의 ‘파워’는 새누리당이나 민통당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6석을 차지했던 18대 국회에서 통진당은 새누리당이나 민통당을 리드하다시피하며 각종 이슈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공중부양’(강기갑)을 하고, ‘최루탄’(김선동)을 터뜨려도 제대로 막는 새누리당 의원이 없었다는 점이나, 각종 사회적 이슈에서 통진당이 보여준 파괴력으로 인해 ‘민통당’으로서는 의석이 2배 넘게 늘어난 통진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 ▲ 통합민주당 결성 후 지도부 선거 당시의 한명숙 대표와 문성근 씨. 한 대표는 13일 대표직을 사임했다. 문 씨는 당내 서열 2위다.[사진:SBS 보도화면 캡쳐]
    ▲ 통합민주당 결성 후 지도부 선거 당시의 한명숙 대표와 문성근 씨. 한 대표는 13일 대표직을 사임했다. 문 씨는 당내 서열 2위다.[사진:SBS 보도화면 캡쳐]

    따라서 ‘통진당’이 대선협조를 무기로 ‘두통연대’를 결성할 때보다 더욱 강하게 요구하면 민통당 입장에서는 안 들어줄 수가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다. 여기다 민통당 지도부의 성향이 18대 총선보다 더욱 ‘왼쪽’으로 가게 되면, ‘통진당’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13일 한명숙 대표가 총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뒤 당 서열 2위인 문성근 씨가 “당에서 결정하면 대표직을 승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성근 씨의 성향은 기존 민통당 사람들보다 훨씬 왼쪽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다 민통당 ‘원로’들은 13일 모여 19대 총선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언론이 이번 선거를 민통당의 참패라고 하는데 이번 선거가 대선이었으면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민통당 원로들 "대선이라면 이겼을 것"…문성근 "당이 원하면 대표 승계"

    신경민 민통당 대변인은 13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신기남, 이부영, 이해찬, 임채정, 정대철, 정세균 등 민통당 원로들이 모여 상임고문회의를 열고 한명숙 대표의 사퇴와 관련된 의견을 교환하면서 한 이런 총평을 전했다.

  • ▲ 19대 총선결과를 표시한 네이버 화면 캡쳐. 일반 지도를 토대로 당선정당을 표시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월등히 많아보이지만, 실제로는 '두통연대'와 박빙이다.
    ▲ 19대 총선결과를 표시한 네이버 화면 캡쳐. 일반 지도를 토대로 당선정당을 표시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월등히 많아보이지만, 실제로는 '두통연대'와 박빙이다.

    신 대변인은 “원로들은 의석수에서는 새누리당에 졌지만 전체 득표수를 보면 민주당이 더 높은 득표를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부산에서의 전체 득표율이 2007년 대선 때보다 10% 이상 올라 질적 분석에 들어가면 대약진을 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전했다.

    신 대변인은 “야권연대까지 140석이면 미흡하지만 국회에서 충분히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고 새누리당을 견제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고 전했다.

    새로운 민통당 지도부에 문성근 씨가 자리 잡고, 원로들이 이 같은 의견을 냈다면, DJP연합이 2000년에 만들어 냈던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총선을 ‘새누리당’의 승리라며 자축하는, 소위 ‘친박계 정치인’이 있다면 1996년 총선을 한 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