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가자는 겁니까?
라이트 밀즈는 그의 저서 ‘파워 엘리트’에서 미국 상류층의 내막을 적나라하게 해부했다. 관료 고위층에 관한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위직은 선출직이 아니다. 도덕성의 결과도 아니다. 능력에 따른 것도 아니다. 오로지 권력이 골라서 앉혀 준 자리다. ‘조직화된 제멋대로(organized irresponssibility)'의 시스템이 출세시킨 사람들이다.” 높은 자리가 범하는 ’제멋대로‘는 현대의 미국에만 해당하는 게 아닐 것이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절대왕정에도, 그리고 오늘의 한국에도 어김없이 맞아 떨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고위직인 국무총리실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했다. 그게 들통 날듯 싶으니까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 하수인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돈도 2000만원 주었다. 청와대 아래 선(線)이 나서서 "내가 몸통...“이라 했다. 윗선이 없다는 것이다. 폭로한 측은 ‘소가 웃을 소리’라고 했다. 라이트 밀즈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건 개인 차원의 부도덕이라기보다는 ‘조직화된 제멋대로’가 낳은 부도덕이다.
제정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절대왕정의 그런 부도덕한 시스템을 없애버리기 위해 고도의 도덕적 우월주의와 이상주의를 가지고 독하게 싸웠다. “나는 악을 쳐 없애도록 선택받은 자”라는 선민의식, 헤겔 좌파에 깔려있는 ’절대 나(absolute I)'의 의식이었다. ’절대 나‘를 자임했던 혁명청년 세르게이 네차예프는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더불어 ’혁명가 교리문답‘이라는 걸 만들었다. 그 중 한 대목은 이랬다.
“혁명가는 심장과 영혼으로 기성 사회질서, 전체 문명세계, 기성법률, 미풍양속, 인습, 도덕과 단절해야 한다. 혁명가는 그런 것들의 무자비한 적이다. 혁명가는 오직 단 하나의 목적-그것을 파괴하는 것만을 위해 산다.” 악을 쳐 없애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의 그 어떤 악도 괜찮다는 발상이었다. 프랑스 혁명 때도 무자비한 ‘혁명적 부도덕’이 있었다. 혁명군중은 마리 앙뚜아네트의 친구 람발 부인에게 집단 성폭행을 하고, 가슴에 난도질을 하고, 시신을 앙뚜아네트 감방 앞에서 보란 듯 끌고 다녔다. 혁명의 이름으로.
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실의 여론조사 조작행위도 바로 그런, 절대선을 자처하는 쪽의 거칠 것 없는 배덕(背德)이었다. 변혁의 대의를 위해선 그깟 부도덕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예사로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도 수전노 노파를 죽이면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나는 절대선, 노파는 쓰레기니까.
역사는 바뀌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 악순환에서는 바뀌는 게 별로 없는 셈이다. 권력 엘리트의 막가기가 있고, 그것을 쳐 없애버리겠다는 쪽의 또 다른 막가기가 있다. 오늘의 우리 사회의 재난도 결국은 화사한 병풍 뒤의 막가기 쓰나미 아닐까? 청와대 국무총리실이 수구적(?)으로 ‘은폐’ 하고, 그걸 매도하던 ‘정의’가 급진적(?)으로 ‘조작’ 하고, 교육감이 ‘선의’를 마구 베풀고, 애들이 선생을 마구 패고, 거룩한(?) 신념가가 성추행을 하고, 지하철 남여가 막가고, 나꼼수가 막가고, 트위터가 막가고, 악풀이 막가고, 광장이 막간다.
사람들의 취향이 이렇게 막가니까 세상을 휘어잡는 방법도 막장 블록버스터와 황색 흥행물이다. 쌍소리, 욕설, 악담, 저주, 맹독(猛毒), 외설, 엽기, 억지, 궤변, 흑색, 난폭, ‘아니면 말고’라야 장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제주 해군기지는 해적기지”란 대사까지 나왔다. 이럴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 있다. “막가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항체는 정히 없는 것일까? 서울 중구에 출사표를 던졌던 조순형 의원이 출마를 접고 정계를 은퇴하면서 답을 냈다.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앞선다.” 사람의 도리란 무엇인가? 할 짓 안 할 짓을 가리는 전두엽 기능이다. 전두엽이 쇠하면 그 분별이 잘 안 된다. 반대로 미발달이면 ‘마음의 경직’이다. 신경학자 엘코논 골드버그의 말이다. 이 둘이 권력과 반권력을 대표할 때 그건 분명 역병일 게다.
류근일 /본사고문,전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i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