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고위급 협의 결과 발표를 보며
  • ▲ 이재춘 전 주러시아 한국대사의 회고록 표지ⓒ
    ▲ 이재춘 전 주러시아 한국대사의 회고록 표지ⓒ

    미-북이 오늘 발표한  양측 고위급 협의 결과를 보면,  북한이 ①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UEP) 중단  ② 핵 미사일 실험유예 ③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UEP 감시 허용 조치를 취하고, 그에 대해 미국은 향후 1년간 북한에 24만톤+알파 의 '영양지원'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 유사한 사례들을  여러 차례 접했던 터라 “또 때가 된 모양이군..”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필자가 1994년10월 미-북간의 제네바 합의 직후부터 북한 핵문제를 직접 다루거나 또는 논의에 참여해 오면서 깨우침을 얻게 된 한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하는 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 측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과 교섭을 하거나 거래를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2년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약속 불이행으로 무효화 된 이후에도 지난 10년간 북-미회담이나, 6자회담 등을 통하여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 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생트집을 잡아 합의 자체를 부정하거나 불이행 하면서 책임을 상대측에 전가하는 수법을 상투적으로 해왔다. 그런가 하면 상대측이 마치 합의를 구걸하는듯한 상황을 유도한 뒤 또 다시 어렵게 재합의 또는 수정합의를 하는 데 동의, 또는 동의 하는 듯 하다 다시 교섭자체를 중단 시키는 작태를 계속해 왔다.  이번의 미-북간의 회담 결과 동시발표도 과거 패턴을 되풀이 한 것이다. 장기간의 상대방 무시전술(?) 후에는 주로 미국측에서 북한에 대해 협상을 요구하곤 했는데, 그렇다면 미국은 그런 바보같은 행동을 왜 되풀이 하는 것일까?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에는 거의 예외 없이 미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진행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표를 얻기 위하여는 골치 아픈 일이라도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시늉을 해야 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즈음 이란의 핵문제가 미행정부의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당분간 유화모드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김정은의 지도체제가 불안정한 가운데 강성대국의 원년을 큰 혼란없이 지탱해 나갈수 있기 위하여는 미국의 식량지원이 절실히 필요했을 것이니, 미-북 양측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약속받은 식량을 받아 '미제국주의자 들이 바친 조공'으로 선전하면서 인민들에게 선심을 쓸 수 있고, 미국에게 한 약속 이라는 것은 안지키면 그만이고 지켜도 손해날 일이 없으니 이번 합의는 북한으로서는 수지 맞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합의로 북핵문제에 마치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 것처럼 보려는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의 착시현상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혹자는 이번을 계기로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되고, 그렇게 되면 핵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남-북관계도 경색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에서 핵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 점은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대한민국도 대선의 해를 맞이한 탓인지, 무분별한 포퓰리즘이 활개를 치고 있다. 개탄할 일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남-북 간의 '신뢰유지'라는 것을 전제로 6.15합의와 10.4합의 등을 포함 남-북 간의 모든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그가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처 버릴 수 없다.

    기본적으로 북한이라는 존재는 '신뢰'를 운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을 박 위원장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72년에 7.4 남-북공동선언을 서명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74년 8.15 경축 행사장에서   박대통령을 저격하고 육영수 여사를 희생시킨 문세광은 누구였는가? 김일성과 김정일이 보낸 저격범이 아닌가. 91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이 합의를 정면으로 어기고 2번이나 핵실험을 하고 이제는 당당하게 핵국가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북한에 대하여 '신뢰' 운운하고 있다니, 박위원장은 바보인가?   아니면 '햇볕정책' 주창자인 김대중의 제자인가?     

    핵문제의 해결도 남-북관계의 정리도 '절대왕조' 북한의 1인체제에 변화가 없는 한 불가능한 것임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보다. 답답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