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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과 한겨레의 억지
사실을 신념에 종속시키는 이들이 기자가 되면 언론은 兇器가 된다.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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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이란 매체의 한 기자가 <'노무현 부관참시’는 MB 심판론 자극할 자충수>라는 제목의 논평을 썼다. 첫 문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보수언론이 ‘노무현 부관참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이고 두번째 문장은 <19대 총선을 40여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대금을 둘러싼 의혹을 다시 들춰냈다>이다.
- ▲ 노무현 전대통령의 아들과 딸ⓒ
이 기사의 '노무현 부관참시'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剖棺斬屍(부관참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죄가 드러났을 때 관에서 屍身(시신)을 꺼내 목을 자르는 행위를 일컫는다. 지금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死者(사자)인 노무현씨가 아니라 그의 딸이다. 딸이 관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살아 있는데 '부관참시'라니? 이 기사는 노정연 씨를 屍身으로 간주한 글로서 아주 모독적이다.
노정연 씨는 성인이다. 노정연 씨에 대한 수사를 아버지에 대한 수사로 확대해석하여 '그런 수사는 아버지를 부관참시하는 것과 같다'는 취지에서 '부관참시'라고 표현하였다면 이 기자는 法治(법치)국가의 언론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딸의 人格(인격)을 아버지의 人格과 一體(일체)로 본다든지 종속적으로 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논평 기사를 읽고 나면 이 기자는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딸은 그 어떤 혐의라도 수사하여선 안 된다'는 守舊的(수구적) 가치관을 가진 기자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기자는 자신의 글에서 '13억 돈상자가 노정연 씨와 관련이 없으니 수사를 해선 안 된다'는 요지의 주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13억 돈상자는 노정연 씨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바탕에서 그래도 '민감한 시기'이므로, 자살한 전직 대통령 딸이므로 수사는 부당하다는 논리 아닌 억지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 등 親盧(친노)세력의 논평, 발언과 일치하는 논법이다. 기자는 '사실이냐, 아니냐'를 일차적으로 따진 다음 자신의 주장을 펴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有不利(유불리)를 기준으로 논평을 하게 되면 정당 대변인이나 선전원 자리가 어울릴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보수언론>이란 표현도 틀렸다. 죽은 노무현 씨를 영혼 인터뷰한 일도 없는 기자의 '멋대로 추측'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자살 직전 남긴 유서엔 '남 탓'이 한 마디도 없다. 죽기 전 그의 곁에 있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2009년 6월1일 한겨레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 원과 100만 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 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내가 책임 져야 할 일인데 모르는 이들이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모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는 뜻이다. 명색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검찰과 보수언론에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누명을 씌우려면 사실적 근거를 대야 할 것 아닌가? 기초 조사라도 해 보고 써야지! 적어도 보수언론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의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은 뒤 투신자살하였을 때 '정권과 검찰이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다.
미디어 오늘 인터넷판에 실린 문제의 이 논평 기사 끝엔 'badcold66'라는 ID를 가진 사람이 쓴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정말 웃깁니다. 총선이 다가오니 자기네가 먼저 "정수장학회"로 꼬투리 잡으며 "박정희 부관참시"하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이제 와 한다는 말이 "노무현 부관참시"라구요? 보수 쪽에 뒤집어 씌우는 꼴이 정말 한심해 보입니다.>
한겨레신문은 2월28일자 <총선 앞두고 노정연 씨 사건 꺼내는 저의가 뭔가>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식의 수사가 계속되면 총선 뒤가 아니라 당장 총선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부담은 검찰이 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다.>
총선에서 야당이 지면 그 책임을 야당이나 수사대상자가 아니라 수사검찰에 돌리겠다는 경고로 들린다. 그런 논법이라면 박희태 전 국회의장 관련 돈봉투 사건, 이상득 의원 관련 수사도 총선에 영향을 주니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야 언론이 아니겠는가? 보수언론은 최소한 그런 억지를 쓰지 않았다.
보수가 아무리 욕을 먹어도 자칭 진보세력보다는 훨씬 '염치'를 아는 이들이란 사실이 새삼 증명된다. 사실을 신념에 종속시키는 이들이 기자가 되면 언론은 兇器(흉기)가 된다. '부관참시'란 참혹한 표현을 쓰는 이들이 바로 노무현 씨를 두 번 죽이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