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들이 페이스 북, 트위터 등 공개될 수 있는 사적 공간을 이용해 이런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법관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쓸 수 있는 말이 있고 쓸 수 없는 말이 있다. 애들이나 쓰는 용어(가카새끼)를 성인이 그렇게 쓰는 것 자체가 잘못...” 아용훈 전 대법원장이 중앙 SUNDAY와 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이라는 직함을 가진 27살박이 청년 이준석은 앞서 “그 분의 표현의 자유만은...” 어쩌고 하는 제법 리버럴 한 말로 ‘가카새끼’ 판사를 과히 나쁘지 않게 말하려 애쓴 바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국민 기본권에 대한 법리적 해석과 판단에 있어서만은 이준석에 비해 단연 교황급이라 할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이준석과는 달리 그것은 표현의 자유의 문제이기 이전에 애냐 성인이냐의 문제라고 ‘판시(?)’ 했다.

    누가 쌍욕을 했을 때는 헌법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기 전에 “에이, 욕은...?” 하고 나무라는 게 성인군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상식’이다. 비공개 된 술좌석에서야 별소리 다 한들 뭐가 문제 될 것인가? 임금님도 귀먹은 욕은 듣는다지 않는가? 그러나 일단 외부로 공개되면 문제가 다르다. 하물며 공인, 그것도 근엄해야 할 판사가 외부로 공개될 것을 뻔히 알고서도 ‘가카새끼’ 어쩌고 했으면 그건 그야말로 성인스럽지도, 판사스럽지도 않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판사는 하고 싶은 소리도 못하고 대통령을 향해 욕도 못하느냐고 한다면 그건 더더욱 기가 찰 일이다. 사람은 하고 싶은 짓 다하고 사는 게 아니다. 해도 괜찮다 하더라도 꾹 참고 안 하는 수가 많다. 선생이라고 왜 욕하고 싶을 때가 없겠는가? 아버지 할아버지라고 왜 쌍소리 하고 싶을 때가 없겠는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인데. 그러나 안 하는 것이다. 특히 아들 며느리 손자 제자가 있을 때일수록.

    판사는 종교인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억제와 무표정과 침묵, 그리고 근엄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직업이다.
    왜 판사에게 금욕을 강요하느냐고? 강요하는 건가, 그렇다는 것이지.
    왜 그래야 하느냐고? 판사가 주관적 감정과 욕구와 심통대로 말하고 시비 걸고 화내고 싸움박질 하고 객적은 소리 하면 객관성과 권위를 잃을까봐.
    저 위해서 하는 소리지, 나 위해서 하는 소리인가?
    누가 위해 달랐느냐고? 알았다, 관두자.

    이런 뻔한 이야기를 이준석은 표현의 자유라는 고상한 소리로 설명하려 했다. 그래 아주 총명하구나. 계속 그 걸음으로...! 한나라당, 참 좋은 사람들이에요, 저런 똑똑한 청년을 그 서슬 푸른 자리에 발탁하다니요.

    류근일 /본사 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