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수도권 격앙..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라" 우려도
  • 4ㆍ11 총선 공천을 앞둔 한나라당이 당 지지도보다 5% 포인트 이상 지지율이 낮은 현역을 일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에서 반발이 속출하고 있다.

    3일 공개된 여의도연구소의 '공천준비관련 검토의견' 문건에 따르면 현역 의원의 교체기준 마련 작업이 상당 수준 진척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당의 '텃밭'인 영남권과 수도권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 방안은 당 지지도가 공고한 지역일수록 현역 의원의 '당 지지율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영남권과 서울 강남권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해 말 실시한 사전조사 결과 '지지율 5%포인트 격차 룰'이 적용될 경우 영남권에서의 물갈이 지역은 90%, 수도권에서 70%에 달한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영남권에선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데 어떻게 '5%'기준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거셌다. 정적(政敵) 제거를 위한 과거의 방안과 비슷하다는 의혹의 시선도 있었다.

    부산의 한 의원은 "차라리 현역 의원들에게 '전부 불출마하라'고 하라"고 불만을 나타냈고, 다른 중진 의원은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부산의 초선 의원은 "당 지지율이 60%고 개인 지지율이 50%인 지역구 의원은 탈락하고 당 지지율이 10%고 개인 지지율이 12%인 곳은 되는 것이냐. 10% 지지받는 사람이 50% 받는 사람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느냐"며 '순진한 접근'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의원은 "수도권과 지방은 지역 환경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5% 기준을 적용한다는 건 불합리하다. 과거 공천 때에도 살짝 등장했다가 다시 들어간 방안"이라며 현역 의원의 대거 탈락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안"이라고 비판했다. 

    '5%라는 기준을 끌어올리는 시도가 뒤따를 수 있으며, 이것이 공천기준 마련 과정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 중진은 "교체지수는 참고자료로 활용해야지 그대로 적용할 경우, 특히 5% 기준으로 적용하면 현역은 100% 날라가게 돼있다"면서 "이런 것은 특정 후보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 선거 때마다 악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남권 의원들의 대안 제시도 이어졌다.

    김성조 의원은 "현역 의원의 기득권 포기형 국민개방 경선을 실시하자"고 밝혔다. 지역별 한나라당 예비후보들 간 1차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1ㆍ2위를 차지한 후보가 최종 경선을 치르자는 것이다.

    다른 의원은 "공천 분란을 차단하기 위한 공천 기준이 필요하나, 이를 위해서는 투명성-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정치는 산수가 아니므로 `5% 룰'을 유일무이한 기준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벨트(강남ㆍ서초ㆍ송파)'에 속한 의원들도 비상이 걸렸다.

    이 지역은 한나라당 지지율이 워낙 높아 현역의원 지지율이 5% 이상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남지역 초선인 A의원은 연말 연초 지역행사에 참여하느라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정도다.

    그는 "작년 말부터 4년간 활동을 담은 의정보고서를 8만여 가구에 발송했다"면서 "5천부 정도는 대로변의 상가와 음식점을 돌면서 직접 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지역구 주민 3천여명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고 하루에 500통 이상의 문자를 보낸다.

    강남지역의 다른 초선인 B의원은 "5%룰이 지역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론조사 기한으로 알려진 설 전후까지 지지도를 끌어올리려고 열심히 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현역 의원이 당 지지도보다 높기는 어렵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예외로 봐야 한다. 특히 강남지역은 항상 현역 의원과 당 지지도에 차이가 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수도권 지역에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만으로 현역의원의 인기가 땅에 떨어졌고 '물갈이론'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기본적으로 지금 상황에선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어 단순히 정당 지지도와 현역 의원 지지도를 물어보면 살아남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구에서 활동하는 19대 총선 예비후보자가 몇 명이냐에 따라 현역 의원의 지지율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예비후보자가 많으면 이들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현역 의원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반대로 예비후보자가 적으면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는 것이다.

    인천 남구을 초선인 윤상현 의원은 여의도연구소의 공천개혁안에 대해 "현장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탁상형 연구용역사업"이라며 "예비후보가 난립한 상태에서 당 지지도와 현역의원 지지도가 5%포인트 이상 차이를 보이는 곳이 전국적으로 80∼90%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재선인 정진섭 의원(광주시)은 "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당의 정체성에 역행하는 후보가 아니라면 공천의 가장 큰 기준은 경쟁력"이라며 "이기는 공천이 중요하며,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참여경선)가 경쟁력 있는 사람을 걸러내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