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배 부장판사는 親美를 惡으로 보는가? 
     
      이런 수준의 感性과 知性을 가진 판사가 과연 재판을 이성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까?
    정치, 이념, 안보적 성격의 사건을 최 판사가 맡으면 반드시 재판부 기피신청이 들어갈 것이다.

    趙甲濟   
     
     최은배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
     
     거의 모든 글은 글쓴이의 교양과 수준, 그리고 가치관을 드러낸다. 문맥상 崔 판사는 親美를 惡으로 보는 듯하다. '뼛속까지' '팔아먹은'이란 극도로 감정적인 어휘 선택은 그가 미국을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가 짐작하게 만든다.
     
     親美는 악인가? 미국은 군사동맹국이다.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젊은이들 延150만 명을 보내 공산침략으로부터 한국을 구하였다. 5만4000명이 죽고 10만 명이 다쳤다. 이런 희생이 없었더라면 최 판사는 김정일 치하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피흘린 代價로 제주도를 달라고 했다든지, 金鑛 개발권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같이 피를 흘려 싸운 관계를 血盟이라고 부른다. 韓美동맹은 혈맹관계이다. 이 동맹 덕분에 한국은 1953년 이후 북한정권의 재남침을 저지하고, 경제건설과 민주화에 노력하여 年1조 달러의 무역국(세계 9위), 세계7위의 수출대국, 세계 5~6위권의 공업대국, 그리고 생동하는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韓美동맹 덕분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은 의무적으로 親美노선을 가야 한다.
     
     親美와 사대주의는 다르다. 親美는 國益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대주의는 國益을 포기한 굴종이다. 李明博 대통령은 親美한 사람이지, 事大한 사람이 아니다. 親美를 해야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親美自主 노선이 맞다. 親美가 사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좌익이다.
     
     최은배 판사는 용어 선택을 잘못 했다. 챠라리 李 대통령을 사대라고 비난하였다면 변명이 가능한데 親美라고 비난함으로써 (그것도 감정적으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드러냈다. 판사는 심판자 역할을 하므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노출시켜선 안 되는 직업이다. 영국 축구팀과 프랑스 축구팀이 경기를 하는데 심판이 평소에 "난 영국놈들이 정말 싫어"라고 公言하고 다닌 인물이라면 심판의 공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괴테는 말하기를 "행동하는 사람에겐 양심이 없다. 관찰하는 사람에게만 양심이 있다"고 했다. 판사는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나 행동가나 참여자가 될 때 양심을 떠나게 된다는 뜻이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다. 행동가로 데뷔하고싶다면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이란 최 판산의 표현은 좌익운동권 수준의 선동이다. 대통령과 관료들을 '매국노' 라고 폄하한 셈이다. 이런 과격한 표현을 공개적으로 하는 판사가 미국, 일본, 독일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법치국가에서 이런 글을 쓰고도 판사직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이란 말은 반박할 가치가 없는 막말이다. 최소한의 논리라도 있어야 반론을 제기할 생각이 나는데, 이는 '하늘의 별따기'란 말처럼 반론의 대상이 될 조건도 결여된 말이다.
     
     이런 수준의 感性과 知性을 가진 판사가 과연 재판을 이성적으로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 정치, 이념, 안보적 성격의 사건을 崔 판사가 맡으면 반드시 재판부 기피신청이 들어갈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법부는 崔 판사 때문에 신뢰도에 손상을 입은 셈이다.
     
     '개방 노선'을 비판한 최 판사의 글로 미뤄 그는 소위 '폐쇄적 자주 노선' 지지자로 보인다. 한국이 1조 무역大國이 된 것은 자주적 개방 노선 덕분이고, 북한정권이 세계 最貧國이 된 것은 폐쇄정책 때문이다. 개방 노선이 제공한 세계란 무대에서 이승만, 박정희, 정주영, 이병철, 과학자, 기술자, 기업인, 근로자들이 신나게 일하였고, 그 덕분에 최 판사는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설마 오늘의 북한을 발전 모델로 여기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