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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저지를 귀공자, 안철수
송복 교수의 ‘세상 읽기'-안철수 신드롬(1)
뉴스파인더 / 송복(논설고문) -
내년의 총선과 대선, 계층과 이념의 첨예한 갈등, 경제난이 겹치면서 우리사회는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뉴스파인더는 우리사회의 원로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눈을 통해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지를 진단한다. 송복 교수의 ‘세상읽기’는 2주에 한번씩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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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했다. 이미 오래 전에 세사(世事)를 세설(世說)하는 일은 그만 두었다.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노인들은 이 시 한 줄만은 꼭 외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노추(老醜)를 면한다. 그런데 왜 써야할 묘비명(墓碑銘)은 쓰지 않고 세평 (世評)에 나섰는가.
그 전말은 이렇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길거리에서 도준호 뉴스파인더 사장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데, 그만 버스를 잘못 타서 약속시간을 40분이나 어겼다. 말이 40분이지 40분 동안이나, 그것도 길거리에 서서 기다려줄 사람은 없다. 그래도 도준호 사장은 40분이나 기다리다가 그 자리를 떴고, 그래도 나는 기대는 안했지만 그 자리로 갔다.
그 자리를 떠난 사람과 그 자리로 달려간 사람이 만날 확률은 1백만분의 1도 안된다. 그런데 우리는 만났다. 복잡한 서울 그 넓은 도심의 어느 한 점에서 참으로 우연히 만났다. 만나기로 한 시간에서 거의 50분이 지난 시점에서다. 이것은 분명 기연(奇緣)이고 조짐(兆朕)이다. 그 조짐은 그 무엇인가 짊어져야 한다는 낌새다. 기미(幾微)다. 기미가 일면 피해갈 수가 없다. 묘비명 대신 세설에 나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세간 화두는 단연 ‘안철수’다. 그냥 ‘안철수’가 아니고 ‘안철수 신드롬’이다.
신드롬은 전염병이다. 대표적 전염병은 페스트 호열자 장티프스다. 그러나 신드롬은 그런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옮겨 다니며 한 지역 또는 전 지역을 휩쓰는 전염병이 아니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이 사람 저 사람 속에 이입(移入)돼서 대다수 사람들이 같은 호오병(好惡病 )에 걸리게 하는 병이다. 사실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는 점에서는 병이라 할 수 있지만, 실은 병이 아니고 병적 증상 혹은 병적인 현상이다.‘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어떻게 병이며, 병적 증상 병적인 현상이 될 수 있느냐는 매우 재미있는 의문이며, 착상이다. 우리 옛시조에 '다정 (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하는 구절이 있다. ‘다정’은 애틋한 정이고, 그런 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함이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좋아함이 지나치다는 것이고, 지나친 모든 것은 병이 되거나 병적인 현상, 곧 신드롬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좋아함, 그것도 한 대상에 집착하다시피 그 좋아함이 지나칠 때, 그래서 국민 여론조사에서 30%대를 넘어 40%며 50%대에 이르면, 그건 분명 신드롬이고, 무언가 그 사회에 이상(異狀)현상이 온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오는가. 왜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나는가.
안철수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철수를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지만 TV에 나오는 안철수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하고 천진하고 무구(無垢)하다. 이 혼탁한 세상에 그렇게 때가 없고 때 묻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나처럼 80을 내일 모레 맞이하는 노인들이 상면한 젊은이는 수도 없이 많다. 더구나 강단에서 평생을 보내다 보면 ‘관상’이라는 것이 은연중 몸에 베여서, 사람을 만나면 절로 그 무게가 달아지고, 그 인격이 투시되고, 그 수기(修己)의 정도가 헤아려 지는 것이다. 다분히 관상사(觀相師)혹은 점쟁이 버릇이랄까 기질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처럼 모든 것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대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과 결과를 분석한다. 그렇게 분석해서 ‘예측’이라는 것을 하지만, 맞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보다는 관상사나 점쟁이의 예언이 더 맞은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 그래서 나이 들면 직관(直觀)을 개발하고 직감(直感)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더구나 어느 한 인물에 대한 자료가 없을 때는 철저히 직관에 따르고 직감을 소중히 할 수 밖에 없다.
그 직관 직감에서의 안철수는 귀공자다, 그것도 우리 시대에 드문 귀공자다. 부드러운 얼굴 아름다운 마음 너그러운 행동, 그 모든 격찬이 다 따르는 그런 귀공자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언가 일을 내고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귀공자다. 그래서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저지름’이다.
송복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뉴스파인더 www.newsfinde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