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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을 거꾸로 배우는 韓民族의 부끄러운 행태
趙甲濟
1592년 임진왜란: 보름만에 서울 함락.
1627년 정묘호란: 後金(후금) 군대가 압록강을 넘은 지 11일 만에 평양 점령(조선, 휴전협상에 응하여 형제의 맹약을 하다)
1636년 병자호란: 後金의 後身인 淸軍이 압록강을 건넌 지 열흘 만에 서울 점령.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다가 항복.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하였던 조선은 그 35년 뒤 정묘호란을 당하였고, 다시 그 9년 뒤 병자호란을 허용하였다. 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경론을 편 탓이다.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였다.
1910년의 韓日합병도 역사의 실패로 배우지 못한 조선조의 종말이었다. 이런 체질은 요사이도 계속된다.
1989~1991년 사이 동구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사회주의 실패를 보고도 한국에선 좌익들이 득세하였다.
2011년 유럽에서 과잉복지로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과잉복지국가의 정권들이 바뀌었다. 이를 보고도 한국에서는 이른바 무상복지 선동이 기승을 부린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을 당하고도 8개월 뒤 또 다시 연평도 포격을 당하였다. 두 번 다 응징을 하지 못하였다.
1870년 普佛전쟁 때 프러시아에 진 프랑스는 이를 갈다가 1914년에 일어난 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을 이겨 빼앗겼던 알사스 로렌 지방을 되찾았다. 이에 화가 난 독일은 히틀러를 등장시켜 1940년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패배시켰다. 프랑스는 그러나 드골의 영도하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반격을 개시, 2차대전이 끝날 때는 전승국으로서 패전 독일을 미국, 소련, 영국과 함께 분할 점령하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다.
일본은 1274년 몽골 고려 연합군의 침공을 받았다. 하카다에 상륙한 연합군은 일본 가마쿠라 막부 군을 大破(대파)하였으나 폭풍을 만나 후퇴하였다.
그 7년 뒤인 1281년 몽골 고려 연합군 10만은 다시 일본을 침공, 상륙전을 벌였다. 이번엔 陸戰에서도 일본군에 밀렸다. 일본군은 몽골군의 再侵을 예상,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가 반격을 하였고 폭풍이 와서 정박중이던 연합군의 함선들이 크게 부서졌다. 살아남은 수만의 연합군은 돌아갔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에 미국 등으로부터 개항을 강요당하자 정신을 차리고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 선제적 근대화에 착수함으로써 식민지 신세를 면하고 오히려 식민지 확보에 나섰다.
한국은 역사의 교훈에서 실패의 반복을 방지할 지혜를 배우는 민족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거꾸로 배우는 듯하다. 즉 실패의 요인을 제거하지 못하고 계속 키워가다가 더 큰 재앙을 잇따라 부르는 것이다. 공산침략으로 300만 명이 죽는 비극을 당한 지 50여년 만에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한국에서 발호하도록 허용한 민족이다. 죽어봐야 죽는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韓民族은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실패의 요인을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하여야 대비책이 나온다. 실패의 요인을 남탓으로 돌리고, 변명만 늘어놓으면 실패의 원인은 치유되지 않고 재발하는 것이다. 조선조의 亡國은 오로지 나쁜 일본 때문이고, 高宗과 閔妃(死後에 명성황후)는 좋은 사람이란 식으로 가르치면 우리가 亡國의 책임에서 벗어날지 모르나 自强-自衛의 교훈은 얻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