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백배사죄, 이해찬은 침묵하며 노무현 배신
  •  민주당은 최근 한미FTA 반대 당론을 ISD로 좁혔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의 FTA는 좋은 것이지만 이명박 정부에서의 FTA는 나쁜 것이라던 기존의 당론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ISD는 노무현 정부가 협상했던 사안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았다. 민주당이 이렇게 당론을 변경한 데에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피해 당사자인 자동차업계에서 오히려 비준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정황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협상 사안 하나로 한미FTA 전체를 반대하기에는 명분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더라도, 결국 노정권이 추진한 ISD를 반대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한미FTA를 추진한 총사령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입장은 어떨까? 그의 저서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홍성사)에서는 ISD에 대해 30페이지에 걸쳐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조차도 좌파세력의 한미FTA 유언비어 유포로 곤욕

     김현종 본부장은 ISD에 대해 “우리가 한미FTA 출범 이전에 체결한 3건의 FTA와 89건의 투자보장협정에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2,500여 건의FTA 및 투자협정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국제적인 원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해명과 일치한다.

     또한 김현종 본부장은 “나는 반복되는 주장들에 대해서도 언론을 통해 가급적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협상단에게 독려하면서도, 한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과 법적 근거에 입각하여 아무리 해명을 해도 그에 대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다가 논리적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만 들려오는 협상단의 좌절과 노고가 안쓰러웠지만, 이 때문에 미국과의 통상 협상 준비에 총력을 쏟아야 할 귀중한 시간과 노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음이 안타까왔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좌파언론들을 비판했다. 이는 최근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인터넷에 한미FTA괴담이 유언비어처럼 퍼지고 있다”며 경고한 것과 맥락이 일치한다. 지금의 한나라당 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 당시에서도 좌파 매체 세력을 중심으로 퍼지는 유언비어에 노대통령 측은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김현종 본부장은 “(ISD로 인해) 모든 정부 정책이 무력화된다거나, 외국인투자자가 영업상 손실을 입는 모든 상황이 분쟁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결론내렸다. 그 근거로서 “우리나라가 일본, 영국 등과 같은 다수의 선진국과 투자중재절차를 포함한 협정을 맺었음에도 현재까지 단 한 건도 피소되지 않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FTA 피할 수 없다면 능동적으로 하겠다”며 한미FTA 추진 결심

     이러한 김현종 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부터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오직 공익만을 위해 삼고초려 하여 스카웃한 인물이다. 2003년 2월 당시 WTO 법률국에서 일하던 김현종 변호사는 노대통령 측으로부터 국제통상관계에 대해 브리핑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귀국한다.

     김현종 본부장은 노대통령에게 “국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의욕이, 안일하고 보신주의적인 관료들 때문에 좌절되어 국익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무대에서는 이런 현상이 종종 나타납니다. 국익을 위해서는 국내 눈치나 보는 보신주의의 틀을 과감히 깨야 합니다”라고 건의했고, 노대통령은 그를 차관보급인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임명한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첫 FTA 상대는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일본으로 정해져있었다. 그러나 김현종 본부장은 “중국은 이미 시장이 크고, 일본은 원천 기술이 우세하다. 그러나 우린 아직 세계 시장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패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된 일본과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먼 곳에서 큰 시장과 먼저 FTA를 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렇다면그 상대는 미국이다!”라는 논리로 노대통령을 설득한다.

     노대통령은 “FTA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며, 이젠 수동적인 자세보다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할 단계에 왔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다시 한번 향상되어야할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라며 한미FTA 추진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현재 좌파세력들이 마치 미국의 압력에 의해 한미FTA가 추진되었다는 비판과는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김현종 본부장은 미국이 주저하는 것을 캐나다, EU 등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해찬 전 총리 역시 “엄청난 비난과 저항이 있을 것이고 상당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우리 경제를 향상시키고 경쟁력을 갖추어 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피하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이해찬, 한미FTA 리더십 발휘, 유시민 협상 시작의 결정적 역할

     

  • 김현종 본부장도 한미FTA 타결 협상의 1등 공신으로 이해찬 전 총리를 꼽는다. 김 본부장은 “주요 현안 타결을 위한 국내 협의는 이해찬 총리 주도로 이루어졌다. 이총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미FTA 협상 출범은 그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 크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며 그의 공을 높이 샀다.

     김현종 본부장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역할도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와 미국은 한미FTA 협상 전에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건강보험 약가 현행 제도 유지, 자동차 배기 가스 기준 유예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해결했다. 종북좌파 진영에서는 이러한 4대 선결조건을 빌미삼아 노대통령을 공격했지만 노대통령은 “4대 문제는 FTA와 관계없이 애초에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미국과 해결해야할 사안이었고,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한 바 없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FTA 추진 와중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약가를 네거티브 방식에서 포지티브 방식으로의 변경을 추진했다. 당연히 미국 측의 항의가 들어왔고, 김 본부장은 약가 변경을 한미FTA 협상 틀 내에서 추진해달라 요청했다. 유장관은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김 본부장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세부 사항들을 FTA의 틀 내부에서 협상하지 않으면 한미FTA가 깨지는 것인데, 좋습니다. 그럼 이제 할 것은 두 가지가 남았습니다. 첫째, 우선 빨리 대통령께 한미FTA 협상이 의약품으로 인해 결렬되었다는 사실을 보고드려야 합니다. 둘째, 그 이후 결렬된 사실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대국민 발표를 해야 합니다”고 유장관을 압박했다. 결국 유장관은 김 본부장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의 꿈 한미FTA, 유시민은 민노당 앞에서 백배사죄, 이해찬은 침묵

      김 본부장은 “유장관도 노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한 한미FTA를 깨기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유시민은 노무현 정부 내내 한미FTA 전도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유시민은 2007년 3월 26일 워싱턴의 뉴아메리카 재단 강연에서 “한ㆍ미 FTA(자유무역협정)가 “기본적으로 개방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제도를 바꾸는 측면이 강해 외환위기 당시 못지 않은 효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참여당을 창당한 이후인 2010년 11월 11일에도 "자유무역협정(FTA) 자체는 필요하다"며 "미국이 우리보다 센 나라이기 때문이 이익이 없다는 논리로 한미FTA를 반대하는데 그럼 우리보다 약한 중국, 인도와 FTA도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중국과 인도에 손해를 끼치면서 이익을 보겠다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여전히 한미FTA 찬성론을 주장했다.

     이렇게 한미FTA 추진의 1등 공신이었던 이해찬과 유시민은 야권통합을 위해, 입장을 180도 바꿨다. 유시민은 민노당 앞에서 노대통령의 한미FTA를 백배사죄했으며, 이해찬 전 총리는 한미FTA에 대해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종에 자신들이 모셨던 노대통령에 대한 배신이다.

    변희재 (뉴데일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