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북한에 유난히 너그러운 박원순을 감싸주는 안철수.ⓒ
    ▲ 북한에 유난히 너그러운 박원순을 감싸주는 안철수.ⓒ

    “‘선거’는 바로 이런 ‘참여’의 상징입니다. 선거 참여야 말로 시민이 주인이 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민주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들린다.

    이 말을 한 인사는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다. 그에 따른 실천을 언급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른 아침 투표장에 나가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어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맞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는 이 말을 편지에 담았다. 그냥 슬며시 말을 던지고 누군가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순백의 종이에 적었다. 조사 하나에도 신경 써가며 퇴고(推敲)를 거듭 했을 것이다. 지난 24일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 후보 캠프에서 벌어진 정치 이벤트였다.

    그는 누구인가. 의사에서, 벤처사업가로. 벤처사업가에서 대학교수로. 이제는 본인이 아니라고 해도 잠재적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순식간에 오른 이다. 그만큼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쁜 투표’, 안 원장의 편지를 읽다 퍼뜩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어인 까닭일까. 의식하지도 않은 찰나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쁜 투표’,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던 말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무상급식은 나쁜 투표이니 투표에 참여하지 말자며 벌인 캠페인의 구호였다. 서울시 전역에 나붙었던 플래카드에 적힌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다’고 하면 안될 것 같다. 민주당 등 야권이 그 투표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한 위력이었다고 말하는 게 더 옳아 보인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장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기억 속에서 시나브로 잊혀져 가지만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지난 8월의 상황이다. 26일 서울시장 선거 역시 그 때문에 치르는 정치 일정이다.

    그런데도 당시와는 너무 다르다. 그 때는 민주시민의 권리라는 투표가 나쁘니 투표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는 뭐라는가. 투표는 시민의 권리라고 말한다. 이 말에 나쁜 투표니 투표하지 말자고 했던 사람들이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맞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투표하러 투표소에 나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는 없다. 투표까지 이르게 된 행위에는 좋고 나쁨이 정파(政派)에 따라 있을 수 있다. 투표에 좋고 나쁨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채택한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이 투표를 그렇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정파가 어우러져 만든 법에 그렇게 명시돼 있지 않다. 이런 투표는 나쁘니 그런 선거는 참여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만류하는 법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투표를 시민의 권리로 보호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내용이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권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 투표소에 나가지 않고 선거에 불참하는 것도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행위다. 그렇다고 시민과 당원의 선거 참여가 기반인 정당이 투표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것은 기본을 벗어났다.

    안 원장은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하게 청합니다.” 투표하자는 것이다. 지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똑같이 적용됐어야 할 말이다.

    민주주의 역사는 발전해야 한다.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책임지고 있는 ‘짐’이다. 정반합(正反合)의 논리를 거쳐 가든, 어찌하든 다음 세대에게 ‘역사의 빚’을 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싸울 때 싸우더라도 원칙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원칙은 선거가 있을 시 투표하는 것이다. 각 정파에게 주어진 몫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음을 유권자들에게 펼쳐 보이는 일이다.

    그래야 두어 달 어간에 투표하지 말자와 투표를 독려하는 말이 교차하는, ‘쪽 팔림’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