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아내와 두 딸의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오길남씨는 5일 "내 딸과 아내를 못 본지 25년이 됐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도록 내 가족을 내게로 귀환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오씨는 5일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가 주최한 북한정치범수용소 관련 기자회견에 나와 "1995년 국제앰네스티를 통해 간접적으로 생존을 확인했고,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를 통해 1999년까지 살아있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후로는 생사조차 알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 온 뒤 1990년대 중반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편지도 보냈고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와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오씨 부부는 1985년 독일 거주 중 북한 요원의 공작으로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고, 남편 오씨만 1986년 북한을 탈출했다.

    오씨는 당시 북한행을 권유한 인물로 작곡가 윤이상, 바이올리니스트 안용구 등을 언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생존한 탈북자들의 증언도 공개됐다.

    3년여간 15호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정광일씨는 기자회견에서 "고문도 심하지만 때려죽이는 경우는 없으나 굶겨죽이는 경우는 많았다"며 "하루에 풀 800㎏을 베고 날라서 쌓아 놓아야 하는데 이를 다 수행하지 못하면 식량의 양도 줄이는데 이런 식으로 일주일이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고 증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아내인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다는 김영순씨는 수용소 생활에 대해 "상호신뢰를 모두 무너뜨리고 서로 물고, 뜯고, 때리게 만드는 곳"이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북한주민들을 구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요덕수용소 수감 당시 오씨의 아내인 신숙자씨와 두 딸을 만난 적이 있다는 김태진 대표는 "신씨의 집에 와플기계가 있었고 옥수수가루를 이용해 와플을 만들어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