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사키 원폭(原爆) 투하 현장에서

    원래 고쿠라에 떨어뜨리려 했으나 구름 때문에 나가사키가 희생되었다. 약1만명의 한국인과 약 200명의 미군도 일본인과 함께 죽었다.

    趙甲濟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우라늄 원폭(原爆)이 투하된 바로 그날 사이판섬 바로 옆에 있는 티니안섬 미군 항공기지에서는 본토에서 가져온 플루토늄 원자폭탄이 조립되었다. 길이 3.25m, 직경 1.52m에 4.5t인 이 폭탄은 생긴 그대로 '뚱보(Fatman)'라 불렸다. 폭발력은 히로시마원폭의 두 배인 TNT 환산 2만1,000t이었다.
     
      이 폭탄을 실은 B-29 폭격기 '블록스카'(Blockscar)는 8월9일 오전 목표인 北규슈의 고쿠라 상공에 도달했다. 산업시설이 밀집되어 있던 고쿠라 상공은 구름과 美공군의 소이탄 공격으로 인한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B-29 조종사는 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상공을 선회하면서 연기와 구름 사이로 구멍이 나기를 기다렸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조종사는 할 수 없이 예비목표지인 나가사키로 향했다. 나가사키 상공도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상공을 세번 선회했을 때는 귀환연료가 충분치 않을 것 같아 투하를 단념하고 티니안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바로 이때였다. 순간적으로 구름이 갈라지면서 나가사키 시내가 보였다.
     
      이때가 오전 11시2분. 조종사는 '뚱보'를 낙하시켰다. 원래 목표물은 미쓰비시 조선소였지만 폭탄은 빗나갔다. 동양에서 가장 큰 우라카미(浦上) 성당 상공 500m에서 폭탄은 폭발했다. 일본 기독교인들이, 일본 막부의 그리스도교 탄압을 견디면서 만들어낸 이 유명한 성당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성당안으로 피난와 있었던 시민 약 7,000명이 죽었다.
     
      나가사키엔 당시 약24만명이 살고 있었다. 8월9일의 원폭(原爆)투하로 1945년말까지 7만3,884명이 죽었고, 7만4,909명이 부상했다. 날씨 때문에 참변을 당한 불운(不運)의 도시 나가사키市의 원폭(原爆)자료관에 가 보았다. 파괴된 우라카미 성당의 남측 벽을 재현한 모형이 놓여 있고, 원자폭탄 모형도 있었다. 이 원폭 투하로 이 도시에 살던 한국인 약1만 명도 죽었고, 미군포로 약 200명도 죽었다. 미군 첩보부대는 원폭(原爆) 투하 며칠 전에 나가사키에 미군 포로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투하는 강행되었다.
     
      미군은 원폭투하 대상 도시를 선정하는 위원회를 설치했었다. 이 위원회가 올린 투하 대상 도시 후보는 교토, 요코하마, 히로시마, 고쿠라, 니이가타였다. 회의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교토 등이 빠지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고쿠라로 압축되었다. 교토가 빠진 것은 당시 미(美) 국방장관 헨리 L. 스팀슨이 교토를 방문하여 이 도시의 찬란한 유적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어 적극적으로 이 도시의 제외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쿄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기로 한 것은 그렇게 했을 경우 천황(天皇)이 죽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일본인들은 결사항전(決死抗戰)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았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의 전시(展示)방법은 원폭(原爆)투하로 인한 비참한 파괴상과 후유증을 소개하는 것이 主이지만 原爆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게 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도 소개하고 있었다.
     
      이 자료관을 둘러보다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왜 한국의 소위 시민단체들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인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비판과 반대를 거듭하면서 원자력의 파괴적 이용인 북한정권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일까? 원자력을 이용하여 안전하고 깨끗한 전력(電力)을 생산하는 것은 나쁘고 범죄정권이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여 조국을 파괴하려 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말인지...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민족반역자-국제범죄자에게 영혼과 양심을 판 자들의 말로를 지켜보고 싶다.
     
      이 원폭자료관을 둘러보니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 당사자인 한국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원폭(原爆)을 개발하여 써보고, 그 原爆에 맞아보았던 두 나라는 '이런 무기는 김정일과 같은 깡패집단엔 절대로 허용해선 안된다. 핵무기는 범죄자들이 갖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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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먼이 원폭(原爆)을 쓰지 않았더라면?
     
      미군은 2차 세계 대전 때 유럽전선에서 약 28만 명의 전사자(戰死者), 태평양 전선에서 약4만1,000명의 전사(戰死)를 기록했다. 전투가 아닌 다른 사인(死因)으로 죽은 사람은 11만5,000여명이었다. 2만5,600명의 포로중 1만650명이 죽었다. 총 44만 명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이다. 부상자는 97만여 명이었다.
     
      일본은 미군이 상륙할 경우에 대비하여 1만 대의 카미카제용 전투기, 53개 사단, 25개 여단을 배치했다. 총235만 명의 정규군이었다. 이들의 뒤엔 약 400만 명의 군문원(軍務員)(민간인), 그 뒤엔 2,800만 명의 시민군이 있었다. 이들은 죽창 등으로 무장하여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미군은 일본 본토 작전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일본측은 1,000만에서 2,000만 명 사이가 죽거나 다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주저 없이 원자폭탄을 투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原爆을 갖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일본 상륙작전을 지시하여 쌍방간 1,0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났다는 사실을 사후(事後)에 미국인이 알게 되었더라면 그 트루먼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릴 수 있었던 수 많은 미군을 죽음으로 몰고간 원흉으로 매도당하고 탄핵당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