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사립대 적립금 8,100억 늘어…곳간 든든, 건물 신축에만 관심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52%, 적립금 활용방안 적극 검토해야“수원대를 배워라”…작년 늘어난 적립금 320억 중 250억 장학금으로
  • ‘반값 등록금’이 심상치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꽤 오랬동안 잊혀졌던 대학생들의 구호가 다소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보수화 됐다는 평가를 받아온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30~40대 아저씨 부대도 여기에 함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년전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다시 재현되는 것 같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만큼 반값 등록금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던 이유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가 8일째 이어지면서 처음 수백명이던 참가자 수가 이제 천명을 훌쩍 넘어섰다. 대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던 집회에 하나 둘 중장년층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등록금 문제에 관한 한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간결하다. 등록금 부담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공약이행 촉구’라는 외침의 속내에는 반은 아니어도 현재보단 등록금 부담을 줄여 달라는 속내가 담겨있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 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얼굴빛은 그리 밝지 않다. 여야 혹은 정치적 이념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반값 등록금 정책시행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재원마련에 있다. 

    만5세 무상교육 등 이미 정부가 내 놓은 교육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데만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데 반값 등록금 추진에 소요되는 6조원대의 막대한 재원을 무엇으로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재원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당에서 나오는 대안처럼 부자감세 폐지 등으로 적지 않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방안도 나온다. 교과부의 초중등 예산 중 일부를 대학교육예산으로 일시 전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느 것도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정부 혼자 나서 될 일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반값 등록금,  "대학들이 등록금을 덜 받으면 된다는 뜻"

    ‘반값 등록금’은 학생들이 내야하는 등록금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학들이 등록금을 덜 받으면 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들은 왜 등록금을 줄이지 못하는 것일까? 왜 해마다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고는 대학운영을 하기 어렵다고 할까? 문제의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이 등록금을 줄이고 정부가 장학금 확대나 학자금 대출이자 면제, 교육기자재 구입비 지원 등의 방식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면 등록금 부담은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등록금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 전국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평균 52%

    대학, 특히 사립대가 등록금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등록금 없이는 한해 살림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교협과 사학진흥재단 등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전국 사립대(전문대 포함)의 등록금 의존율은 평균 52%를 기록하고 있다.

    1년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재단이 내는 전입금이나 부속병원 수익, 기타 교육 부대사업을 통한 수입은 다 합쳐도 자금수입총계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부금을 통한 재원마련은 더 요원하다. 2009년 기준 전국 332개 사립대(전문대 포함)의 기부금 수입은 모두 합쳐 5,812억원으로 학교당 평균 17억5천만원이었다. 이같은 기부금 규모는 전체 자금수입총계의 2.4%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원하는 지원금도 전체 자금수입총계의 11.6%에 그치고 있다. 

    국내 대학은 학생들로부터 걷는 등록금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재정구조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해답은 등록금 의존율을 줄이는데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지원금이 획기적으로 올라가거나 수익사업을 통한 부대수입 비중을 크게 늘려야 한다. 대학이 ‘돈벌이’에 나서지 않는 이상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쌓여만 가는 대학 적립금, 작년 한해만 8,100억↑…건물 신축에는 물쓰듯, 장학기금은 ‘인색’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학마다 쌓아두고 있는 적립금을 활용하면 등록금 의존율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현재 각 대학은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천억이 넘는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2009회계연도 사립대 적립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누적적립금은 6조 9천억원대에 이른다. 대학별로는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등이 5,000억원 이상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다.

    고려대, 경희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등 유명 사립대들의 적립금도 1천억을 넘었다. 계명대와 수원대 등 지방대도 2천억 이상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특히 지난 한 해에만 전국 사립대들은 학생들로부터 거둬들인 등록금에서 무려 8100억원을 빼 적립금을 불렸다. 이처럼 곳간이 튼튼하지만 이들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평균 40%가 넘는다. 그 이유는 적립금 활용구조에 있다.

    대부분 대학의 적립금 활용처는 건축비용이다. 연구기금이나 장학기금으로 사용하는 비중은 채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마저 원금을 보존하는 기금이라 실제 활용금액은 훨씬 적다. 적립금을 건물 신축 등 학교의 하드웨어를 확장하는데만 사용하는 셈이다.

    대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곳간을 쌓아두고는 정작 대학생들의 장학금 확대에는 인색하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적립금을 푸는 것이야말로 등록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해법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각 대학이 쌓아 둔 적립금의 70%만 풀어도 등록금 문제는 해결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도 “정부 교육재정 확대가 근본적인 답이지만 대학이 스스로 적립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대학의 방만한 운영실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서울의 사립대 교수는 “경영 및 회계상의 투명성 보장이 먼저”라면서 “경영개선을 위한 노력이 같이 이뤄져야 등록금 의존율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등록금 부담 줄이기? “수원대를 배워라”

    최근 대교협이 자체 TF를 구성, 적립금 활용을 포함한 등록금 부담 완화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은 그래서 더욱 관심을 끈다. 때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다.

    실제 적립금을 활용해 장학금을 늘리겠다는 대학도 나왔다. 수원대학교는 지난달 26일 작년 1년 동안 모은 적립금 320억원 중 시설개선을 위한 건축기금 80억원을 제외한 250억원 전액을 장학기금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수원대 이인수 총장은 “결산적립금 사용방안을 놓고 이사회와 논의한 결과 장학기금을 대폭 늘려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적립금의 일부를 장학기금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수원대의 누적적립금은 올해 2월 현재 2,972억원이다.

     

    미국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26%, 투자수익 비중 30% 넘어

    해외 대학들의 사례도 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
    미국 사립대의 경우 전체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 대학에서는 거의 전무한 투자수익 비중이 30%를 넘는다.

    기부금 비중도 전체 수입의 10%를 웃돈다. 부속병원 운영 및 부대사업을 통한 수입도 마찬가지다.

    기부금과 각종 부대수입을 모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주식이나 펀드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고 이를 학교 경비로 사용하면서 등록금 의존율을 줄이고 있다.

     

    8월부터 등록금으로 적립금 불린 대학 공시, ‘든든학자금’ 군 복무 기간 이자 면제 추진

    한편 교과부는 오는 8월부터 학교재단 적립금 중 등록금 회계와 기금회계를 구분해 공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이 둘이 구분돼 있지 않아 각 대학이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얼마나 불렸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8월부터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불리는 경우 그 내역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교과부는 앞으로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과도하게 불린 대학을 ‘대학알리미’ 등을 통해 공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대학이 등록금을 과도하게 사용해 적립금을 쌓는다고 해도 이를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공시’ 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있다.

    교과부는 이와 함께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든든학자금)’의 군 복무 중 이자 면제를 비롯, 대학생 근로장학금 3배 확대, 차상위 장학금 지원 연장, 기부금을 통한 장학금 재원 1조원 확보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현재 4.9%인 든든학자금 이율을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차별화해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