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발언은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 김진표의 북한인권법 보는 법 

     “북한인권법이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데 실제 도움이 되면 왜 반대하겠습니까. 제가 북한인권법을 읽어 봤는데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보다는 자칫 북측의 반발을 불러오거나 북한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어요.” (조선일보 5/17)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자칫 북측의 반발을 불러오거나...“를 우려한다면, 대한미국 건국부터가 북측의 반발을 불러 올 일이었었느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김대중 집권 직전까지의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가 북측의 반발을 불러올 일이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대한민국의 존재이유 자체가 김일성-김정일의 반발을 불러올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을 지키고 행동화 하는데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반발이 두려워 우리의 포기할 수 없는 원칙까지 천명하지도 행동화 하지도 못 한대서야 그게 어디 대한민국인가? 

    “북한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라고 한 대목도 맹랑하기 짝이 없다.
    비판은 비방과 다르다. 비판의 자유야말로 대한민국의 포기할 수 없는 원칙 중 원칙이다. 민주당은 그 원칙을 꽤나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원칙에 따라 민주당은 권위주의 시절에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독재’라고 비판했다. 그걸 아마 민주당의 존재이유, 포기할 수 없는 원칙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독재-인권 원칙이 남한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면 민주당은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가? 아마 길길이 뛰었을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반(反)독재-인권해방을 위한 비판은 민주당의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생각했을 터이니까. 

    그런데 이 반독재 인권해방을 위한 비판의 원칙을 김정일 폭정으로 신음하는 북한동포의 참상에 적용하자는 것은 왜 안 된다고 하나? 권위주의 시절에 그 원칙이 남한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의 김정일 북한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소지만은 절대로 걱정해야 한다?

    도대체 왜, 왜, 왜? 남한과 민주당의 인권만 인권이고 북한 주민의 인권은 인권 아닌가?

     북한 인권법은 “북측을 비판하는 목적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한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의 발언(조선일보 5/17일다)은 대북정책과 대한민국 헌법의 상호관계를 두고 중요한 논제를 함축하고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 추구와, 비판의 자유를 핵심가치로 하는 우리 헌법정신을 어떻게 상관(相關)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결론부터 앞세워,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비판의 자유와 원칙은 평화정책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추구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비판의 자유와 원칙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반세기를 피 흘려 싸웠다. 그게 대한민국 현대사였다. 백마고지의 영웅들이 흘린 피, 연평 해전 때 우리 장병들이 흘린 피도 바로 그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가치를 빼면 대한민국에 남는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측은 남북대화를 할 때도 자신들의 원칙(남조선혁명)을 포기하거나 수정한 적이 없다. 전시(戰時)에는 대포와 탱크로, 대화 테이블에서는 일방적 주장과 궤변과 억지와 속임수로 그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대화’라 해서 우리의 원칙, 우리의 존재이유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대화는 대화이고 비판은 비판이다. 각자가 자기 원칙을 견지한 채 마주하는 게 대화다. 그게 대등성(對等性)이다. 한 쪽은 원칙을 지키고 다른 한 쪽은 원칙을 포기하는 건 대화 아닌 투항이다.

     김대중 정권이 남북간 상호비방 금지라는 명목으로 남한 언론들의 대북 비판과 ‘김대중 식 햇볕’ 비판을 적대한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나의 소속 언론사와 사주(社主)와 나 개인 및 동료들이 심한 시련을 겪은 바 있다.

      훗날의 사주(社主)의 공개(출판)된 술회에 따르면 “김대중 주필, 류근일 논설실장,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을 자르면 선처를 고려할 수 있다”는 투의 통첩이 왔다고 한다. 이유는 이들이 ‘김대중 식 햇볕정책’을 자꾸 시비 건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주측은 이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나와 내 동료도 일관된 비판적 논조를 꺽지 않았다. 

     남북대화를 한다고 해서 헌법이 규정하는 비판의 자유를 접어야 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민간사회 언론의 비판적 논조까지 입막음 하려 했다는 것은, 그리고 북한 동포들의 인권참상에 대한 연민(憐憫)의 표현(북한인권법)까지 관둬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정면의 거역이다. 김진표 발언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인권법은 북측을 비판하는 목적에 이용될 소지가 있어서 안 된다?

    참,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나?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