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월요일인 31일 시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무장관과 재무장관 등을 교체하는 일부 개각을 발표했으나, 시위대는 무바라크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며 7일째 시위를 이어갔다.

    이집트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 광장에는 이날도 이집트 국가를 부르며 `물러나라..우리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 수천 명이 모여들었으나, 군은 이를 제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추가 개각 발표도 역부족 =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에 대한 대책으로 내각 해산을 천명한 지 이틀 만인 31일 새 내각이 구성됐다.

    이집트 국영 TV 보도에 따르면 강경진압을 주도해 시위대의 표적이 돼온 하비브 알-아들리 내무장관이 물러나고, 경찰청장 출신인 마흐무드 와그디가 신임 내무장관에 임명됐다.

    재무장관에는 사미르 모하메드 라드완이, 무역장관에는 사미하 파우지 이브라힘이 각각 임명됐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부의 핵심인 모하메드 탄타위 국방장관은 유임과 동시에 부총리를 겸임하게 됐고, 아흐메드 아불 가이트 외무장관도 유임됐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주말 오마르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한 데 이어 이날 추가 내각개편을 단행했지만,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반정부시위대는 내무장관 교체소식에 "우리는 현 체제의 퇴진을 원한다"며 무바라크의 퇴진을 거듭 촉구했다.

    ◇백만인 행진 및 총파업 예고 =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반정부시위대는 내달 1일 수도 카이로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인 `백만인 행진'을 열고,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시위 조직책 중 한 명인 에이드 모하메드는 AFP 통신에 "내일 백만인 행진을 벌이고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파업지령은 지난 30일 오후 운하도시인 수에즈 근로자들에 의해 처음 내려졌다.

    또 반정부시위대는 엘바라데이와 무슬림형제단이 포함된 위원회를 구성, 정부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하기로 했다.

    엘바라데이는 CNN과의 회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며칠 내로 이집트를 떠나야 한다며 "권위주의 체제를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서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오마 샤리프도 이날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집트 정부는 `백만인 행진' 시위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이날 철도 운행을 전면 중단시켰고, 자국내 반정부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던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소속 기자 6명을 체포했다.

    ◇열쇠 쥔 군 침묵 = 무바라크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할 열쇠를 쥔 군은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탱크와 장갑차를 배치하고 신분증 검사를 했지만, 시위대의 광장 진입을 막지 않았다.

    광장에는 `군은 이집트와 무바라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무바라크에 반대하는 내용의 낙서가 그려진 탱크 옆에서 시위대와 군인들이 차와 과자를 나눠먹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집트군은 현재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퇴진을 원하는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으며, 시위대에 대해서도 별다른 진압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집트군의 온건한 시위대처 방식에 대해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가 칭찬을 보냈다.

    마이크 멀린 미 합참의장은 지난 30일 에난 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강경 진압에 나서지 않는 이집트군의 프로정신을 높이 평가했다고 합참의장 대변인 존 커비 대위가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이집트군이 평화로운 시위대와, 국민에게 위협이 되는 약탈자 등 범죄자를 구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집트군의 자제력을 칭찬했다.

    ◇서방 `질서있는 이행' 주문 =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측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 대신 폭력사용 자제와 `질서있는 이행'을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 30일 전화로 이집트 사태를 논의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부로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각 정상과 통화에서 폭력을 반대하고 양측에 자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 등 보편적 권리를 지지하면서 이집트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정부로 질서 있는 이행을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무바라크 집권 후 매년 13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쏟아부어온데다, 이스라엘과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은 아랍국가인 이집트가 중동 평화 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중동평화특사인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무바라크 퇴진 여부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집트 지도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예루살렘에서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집트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변화인가 하는 점과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탈출 대혼잡 = 각국 정부가 이집트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철수시키거나 이집트 여행을 제한하는 등 보호조치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이날 카이로 국제공항에는 수천 명의 외국인들이 특별기에 탑승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대혼잡을 빚었다.

    AP 통신에 따르면 카이로 국제공항의 신축 3번 터미널에 몰려든 일부 승객들은 서로 격한 말다툼을 하거나 주먹질을 주고 받는 일까지 벌어졌고, 창구 직원 부족으로 인해 혼란이 한층 가중됐다.

    이날 정오까지 미국과 덴마크, 독일, 중국, 영국, 캐나다, 포르투갈, 아제르바이잔 등이 자국민의 철수를 돕기 위해 특별기를 보냈다.

    이날 오후 150명의 미국인을 태운 전세기는 이날 오후 지중해 키프로스에 도착했고, 중국은 카이로 공항에 발이 묶인 자국민 500여명을 데려 오려고 대형 여객기 2대를 급파했다.

    일본 외무성도 소요사태로 발이 묶인 자국민 수송을 위해 전세기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직원과 가족들로 하여금 이집트를 떠나 귀국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세계 증시.유가 타격 = 이집트 시위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정치적 위험 상승으로 이집트의 빈약한 공공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날 이집트에 대한 신용등급을 Ba1에서 Ba2로 한 단계 하향조정한다고 밝히고, 등급 추가 하락 가능성도 시사했다.

    아시아와 유럽 증시에서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영국 런던증시의 FTSE 100 지수를 비롯한 유럽 주요 증시는 이집트 사태의 여파로 개장 초부터 약세를 면치 못했다.

    또 수에즈 운하를 통한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이날 브렌트산 원유의 가격이 28개월래 최고치로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