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긴급 출동해 북한 주요도시들 포위 훈련 김정일 시찰은 탱크부대 신임 두텁게 하려는 것
  • 북한 김정일은 2010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선군혁명 영도'를 상징하는 탱크부대를 시찰하고 훈련 상황을 지켜보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일이 오중흡 7련대(항일 빨치산부대) 칭호를 받은 '근위서울류경수 제105땅크사단'의 군사훈련을 보았다"면서 "모든 군인들이 사회주의 조국을 수호할 수 있게 정치사상적, 군사적, 육체적 용사들로 자라난데 대해서 김정일이 큰 만족을 표시하였다"고 밝혔다.
     
    자유북한방송은 “김정일이 군 최고통수자로서 탱크부대를 찾은 것은 현 한반도 정세 긴장에 대처하여 인민군의 사기를 올려주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 내 혼란스러운 민심 속에 폭발할 수 있는 반란이나 소요를 진압하기 위한데 기본목적을 두고 있다”고 7일 전했다.
    방송은 “김정일이 105땅크사단을 방문한 것은 앞으로 반발할 수 있는 내부의 그 어떤 반란기도를 탱크로 진압할 수 있게 사전에 탱크부대에 대한 신임을 두터이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군장교로 복무하다가 제대 후 탈북한 김모씨는 "북한에서 탱크부대들은 주민들의 소요를 눌러놓기 위한 시위진압용"이라고 방송에 주장했다.
    그는 1998년 2월 제815훈련소 탱크 여단 작전참모 최모씨의 경험담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김씨는 여단 참모 최씨가 "자신들은 상급으로부터 ‘폭풍’(비상소집)명령을 받고 탱크를 몰고 상급에서 주는 좌표에 따라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 달렸다. 이른 새벽 정지 명령을 받고 탱크에서 나와 보니 그곳이 바로 소요가 있었다는 황해북도 송림시였다. 우리는 상급의 명령에 따라 도시를 탱크로 둘러막았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최모씨는“당시 갑자기 비상소집 되어 출동명령이 떨어지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결국은 송림시 주민들을 탱크로 진압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투임무였다”고 김씨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최근 탈북한 이모씨는 북한 탱크지도국 일부 간부들이 "일단 유사시 남한으로 공격하려면 북한에서 고속도로와 일반국도의 두 길로 탱크가 나가다가 판문점을 지나 서울로 진격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간부들은 "남한에 네 개의 고속도로와 일반도로가 있어 공격은 빠르나 후퇴하려면 남한에서 북으로 들어오는 도로가 두 길 뿐이다. 비행대 폭격으로 앞뒤로 두 길만 차단하면 탱크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독안에 든 쥐나 같은데 무슨 탱크가 이리도 많은가" 라고 의문을 가진 고위군관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방송은 “모든 것을 종합 분석하면 철저히 북한의 탱크부대들은 전시용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안전을 위해 김정일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한 마디로 반란이나 소요가 일어나면 그것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김정일이 최근에 자주 행차하는 북한의 탱크부대들”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