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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공방으로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이번에는 서로 ‘준예산 모의’를 두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준예산이란 연말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더라도 꼭 집행해야 하는 금액(공무원 임금, 사회복지 교부금 등)은 쓸 수 있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로 헌정 사상 단 한 차례도 집행된 적 없는 제도다.
때문에 집행부나 의회에서 이를 계산하고 공방을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상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무책임함으로 해석될 수 있어 서로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과 명분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네 탓 공방’을 먼저 시작한 쪽은 시의회 측이다.
◇ 서울시의회, “오세훈, 계획적으로 시의회 권한을 무력화하려 했다.”
"서울시가 이번 사태 이전부터 준예산을 검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의회 의장석 점거, 시정거부 선언, TV토론 제안 등이 모두 치밀하게 짜인 각본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서울시의회 민주당협의회는 9일 서울시가 정례회가 한창이던 시점인 지난 11월 30일 행정안전부에 '준예산 운영관련 유권해석'을 요청한 문건이 입수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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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출석을 요구하는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뉴데일리
주요 내용으로는 준예산집행 관련 지방자치법, 지방재정법,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등 관계 법령상 기준에 대한 것과 지방의회가 집행부의 동의 없이 지출 예산을 증액할 경우 재의요구, 재의결, 대법원 제소 과정에서의 효력발생 여부 등이다.
오 시장 입장에서 끝까지 무상급식을 거부할 경우 따르는 법적 효력과 책임 소재를 미리 판단했다는 말이다.
협의회는 시의회 의장석 점거, 시정거부선언, TV토론 제안 등이 치밀하게 짜인 각본이라고 주장했다.
강희용 시의원(민주당)은 “이 문서에는 시의회가 예산안 심사를 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집행부가 고시거부는 물론, 재의요구, 대법원 제소, 집행정지결정 신청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회를 통과한 예산안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강 의원은 또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준예산을 몰래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의회의 고유권한인 예산심사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는 의회의 권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오 시장이 의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분개했다.
◇ 서울시, 유권 해석은 시의회가 먼저 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을 뿐…
시의회 민주당 측의 주장이 서울시는 즉각 해명자료를 통해 반박했다.
준예산을 가정한 것은 시의회 측이며 이를 토대로 집행부를 압박했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의회는 시가 유권해석을 의뢰한 11월 30일보다 약 한 달이 앞선 같은 달 2일 허광태 시의장의 명의로 비슷한 내용을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을 경우에 시민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무적으로 예측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며 “따라서 서울시는 법령상 명확하지 않은 준예산으로 집행 가능한 경비 등에 대해 행정안전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또한 시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해 지방자치법 제127조에 정한 법정기한 내 이미 의회에 제출했다"며 "의회는 예산안을 회계연도 시작 15일전까지 의결해야 하고, 이 예산안이 적법하게 의결되었다면 시는 의결된 예산에 따라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어 "준예산의 사전모의, 각본 등의 주장은 지나친 왜곡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시는 의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의결해 내년 예산의 원만한 집행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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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상 이번 무상급식 공방은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다. 사진은 지난 9월 고재득(성동구청장) 서울구청장협의회 회장, 오세훈 서울시장,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 곽노현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왼쪽부터)이 친환경 무상급식과 '3무(無)학교' 등 서울지역의 교육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여 손을 맞잡은 모습ⓒ연합뉴스
◇ 예산심사는 이미 저 먼 곳으로… 파행 불가피
이처럼 서울시와 시의회가 끝없는 공방을 벌이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예산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오세훈 시장은 “의미 없는 시정 질문에 더 이상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입장을 공고히 했고 시의회 측은 “오 시장의 참석 없이는 예산심사도 없다”고 못 박은 상태다.
때문에 오는 17일로 예정된 서울시 예산심사는 파행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의회 측은 “오 시장이 시정 질문 불참에 대한 사과와 자진 출석하지 않을 경우 시교육청 예산 심사만 진행되며 더 이상의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오 시장은 이미 2차례에 걸쳐 시정 질문을 참석해 충분히 성의를 보인 것이라 판단했고 더 이상의 참석은 의미가 없다”며 “따라서 서울시는 시의회의 예산 심의만 기다릴 뿐이며 경우의 수에 따른 대비책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양 측 싸움의 피해자는 시민이다.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예산 집행이 전면 중단돼 현재 시가 진행 중인 사업도 ‘올 스톱’될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