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이후 좌파운동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리영희 교수가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 앞에 좌파세력은 일제히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 타계'라면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역설의 변증>(1987)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담집 <대화>(2005) 등의 책을 통해 좌파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사상의 은사'로 군림했다.

    특히 그는 박정희 시대까지의 반공이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에서처럼 '우상'과 맞서온 지성인인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역겨운 나로서는 그의 발언들을 놓고 길게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그는 좌파들의 주장처럼 '우상파괴자'가 아니라, '우상 숭배자'였으며, 말년에 이르러서는 그 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렸다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의 죽음을 알린 오마이뉴스 등 좌파매체들이 전하는 그의 이력을 보면 1957년 예편한 뒤 언론인 생활을 시작, 합동통신 등에서 외신부장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합동통신 등이라?

    여기서 '등'이라는 경력 속에는 1965~1968년 조선일보에서 외신부장을 지낸 경력이 숨어 있다.

    참 알뜰하지 않은가? 일제 하에서 매일신보 기자를 하기만 했어도 '친일파'라며 부관참시를 하던 자들이 '사상의 은사'가 자기들이 그토록 저주하던 조선일보에서 자그마치 '부장'씩이나 한 것은 모른 체 하고 넘어간다.

    왜? 자기들의 '우상'에게 '반동-친일'신문 조선일보에서 복무했다는 기록이 남아서는 안 되니까. 

    바로 그 조선일보 시절의 얘기다. 어느날 리영희는 동료 김모 기자에게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쳐내려와서 통일이 되면, 나는 이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나의 삶을 회개하고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살겠노라"고.

    그 얘기를 들은 김모 기자는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좌파운동에 몸을 담았거나 동조적이었던 지식인들에 의하면 1960년대말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가 격화되면서, 우리도 베트남식처럼 무장봉기를 거쳐 통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고 한다.
    리영희도 그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북한이 쳐내려오면 다시 태어나 그 체제 속에서 충성을 다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했던 사람, 이런 자를 '빨갱이'라고 안 하면, 누굴 '빨갱이'라고 할 것인가?

    그는 대한민국의 '반공'과 '친미'라는 우상을 깨기 위해서는 평생 진력했지만, 김일성-김정일이라는 '우상 중의 우상'에 대해서는 평생 침묵했다.

    당연한 얘기다. 그는 북한체제 밑에서 충성을 다하기로 다짐했던 '우상 숭배자'였으니까. 

    1980년대 저항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그리고 소위 민주화가 되면서 좌파들에게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자신이 서서히 '우상'이 되어 갔다.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질 때 잠시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리영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좌파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005년에 나온 대담집 <대화>를 보면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그의 교만과 아집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2007년 5월 남북열차 시험운행 행사 때 방북했던 리영희는 북측 관계자들에게 "내 제자들이 남쪽 사회를 쥐고 흔든다"고 자랑했다.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위치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상과 이성>을 말하던 그에게서 이성은 사라지고 우상만 남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94년  리영희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말은 아름답지만, 리영희는 자신의 평생 '좌우의 날개'로 날지 않았다. 왼쪽 날개만 열심히 퍼덕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