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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이 아니다.
양 동 안
우리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자주 정치의 목적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진지하게 따져보면 타당하지 않는 말이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사명이다.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만족도이다. 인간의 심리적 만족도는 인간이 욕구를 적게 가지고 욕구에 대한 충족을 확대 평가할수록 높아진다. 따라서 행복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떤 심리적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지, 객관적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목적인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객관적 조건에 관한 일이지 국민의 주관적 심리상태에 관한 일이 아니다.
정치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국민의 행복이 완전히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조건을 정의롭게 만드는 정치와 국민의 심리상태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항상 동행할 수는 없다. 국민이 생활하는 사회적 조건을 정의롭게 만드는 정치가 진행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심리상태를 행복하게 만드는데 기여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때도 많다.
정치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타국과 전쟁도 해야 하는데, 국가가 타국과 전쟁을 하려하면 국민들은 대부분 불행한 심리상태를 가지게 된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해야 하는데 세금을 내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불행한 심리상태를 가지게 된다. 무질서가 만연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법률위반자들을 대규모로 감옥에 보내야 하는데 그런 것도 국민들의 심리상태를 불행하게 만든다.
반면에, 정치가 크게 잘못되어도 국민은 행복한 심리상태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는 세계 최빈국에 속하며 사회적 무질서가 심한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 국민은 세계에서 행복감을 가장 높게 가진 국민이다.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독재가 실시되던 시기의 독일 국민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당시의 서유럽 국가들의 국민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가졌다.정치가 국민의 행복을 위주로 진행되면 정치의 본래 목적인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가 국민의 주관적인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면, 정치인들은 국민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정치를 하게 되면 정치인들은 광대나 선동가가 되어야 하며, 국가에 꼭 필요한 일이라도 국민이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이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서 국민의 불행감을 자극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많은 것은 이 나라의 정치가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한 정치로 타락할 조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나라 정치가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는 정치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도록 진행되려면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행복 여부를 묻지 말고, 사회의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정치적 담론에서 국민의 행복을 삭제해버려야 하고, ‘국민은 언제나 현명하다’는 따위의 국민에 아첨하는 소리들을 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는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으며, 국민은 현명할 때도 있고 어리석을 때도 있다. 국민들도 국민에게 아첨하고 대중의 기분 맞추는데 주력하는 정치인들을 외면해야 한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