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Lucy 이야기 ② 

     다음날 아침 김태수는 오랜만에 아버지 김영복과 식탁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한다. 김영복은 귀국한 김태수가 밖으로만 싸돌아 다니는 것이 불쾌했던 참이라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이제 행사는 다 끝났으니 언제 떠날꺼냐?」
    김영복이 불쑥 묻자 김태수가 시선도 들지않고 대답했다.
    「며칠 있다가요.」

    어머니와 가정부는 주방에 있어서 식탁에는 둘 뿐이다.

    김영복이 씹던 것을 삼키고는 다시 묻는다.
    「참, 너 친구하고 같이 왔다던데. 그 친구는 뭐하는 사람이냐?」
    「사업해요.」
    「미국에서?」
    「예.」
    「미국인이겠구나?」
    「예.」

    그리고는 김태수가 김영복을 보았다. 김영복은 김태수를 32살 때 낳았으니 66세다. 김태수는 아버지 나이를 계산할 때 제 나이에 32를 더한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경찰서장이셨다고 했지요?」
    「아, 그럼.」
    해놓고 김영복이 빤히 김태수를 보았다.
    「그건 왜 물어?」
    「훌륭한 분이셨어요?」
    「그럼.」

    머리를 끄덕인 김영복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애국자이셨다. 청렴하셨고, 그리고...」
    「아버지가 몇 살 때 돌아가셨지요?」
    「가만, 내가 서른살때인가? 1972년이니까 맞구만.」

    혼자 머리를 끄덕였던 김영복이 김태수를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네가 갑자기 할아버지한테 관심을 갖다니. 나이값을 하는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이승만을 어떻게 생각 하셨는지 아세요?」
    불쑥 물었지만 김태수는 시선을 내렸다. 알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다.

    그러자 김영복이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내가 18살 때 하와이로 떠나셨지.」
    「......」
    「네 할아버지는 일생동안 그분을 존경하셨다. 집 안방에 그분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아침에 경례를 하시더구나.」
    「......」
    「이승만 대통령이 1961년 하와이로 떠나자 네 할아버지도 경찰을 그만 두셨어. 그땐 도경찰국장이 되시기 직전이었는데 사직서를 내신거다.」
    「......」
    「그리고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돌아가시자 며칠동안 우셨다. 참 그분한테는 정성을 다 바치셨지. 좀 특별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이승만과의 관계를 모르는 것이다.
    1954년에 신문에도 보도된 사건인데 그 당시의 아버지는 12살쯤 되었을테니 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숨겼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김태수가 시선만 주고 있었으므로 김영복이 풀석 웃었다.
    「너,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
    「예?」

    놀란 김태수가 눈을 크게 뜨자 김영복은 말을 잇는다.
    「그래. 난 내 아버님 영향을 받아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감정은 좋아.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너한테까지는 강요하지 않을란다.」
    「......」
    「인간은 말이다. 다 인연에 영향을 받는단다. 네 할아버지도, 나도...그게 인간이다.」

    그때 김태수는 길게 숨을 뱉는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