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흘 후에 벽지 작전이 끝났을 때 정기철은 15일 일해서 숙식비 빼고 220만원을 모았다. 열이틀간이나 철야 작업을 한 결과였다.
     
    「정일병, 오늘 서울 올라갈거야?」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아파트로 오윤수가 찾아와 물었다.
    「괜찮다면 오늘 저녁에 나하고 한잔 마시고 내일 올라가지 그래?」

    오윤수는 사람들하고 부대끼기 싫다면서 고시텔에서 출퇴근을 했다.

    「예, 아저씨.」

    아버지보다 오윤수가 다섯 살이나 더 많은 57세였는데 더 젊은 것 같다.
    그날 저녁, 정기철과 오윤수는 유성의 돼지갈비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자, 취하기 전에 먼저 이것 받고.」
    하면서 오윤수가 정기철에게 접혀진 쪽지를 내밀었다.

    「연희 전번 따온거야. 받아.」
    「아유, 아저씨.」
    「돈 받고 파는거 아니니까 받으라니까.」

    오윤수가 눈까지 치켜 떴으므로 정기철은 쪽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금맥은 보지 못했지만 사람 볼 줄은 알아.」
    잔에 막걸리를 따르면서 오윤수가 말을 잇는다.
    「자네 몸에 금맥이 줄줄이 있어. 좋은 업을 받을 인연이 줄줄이 뻗쳐 있다구.」

    알 듯 모를 듯한 소리를 늘어놓던 오윤수가 머리를 들고 정기철을 보았다.

    「그날 새벽에 듣고 짐작했겠지만 내가 쫄딱 망해서 이혼 당한게 아냐. 마누라가 내가 금 캔다고 돌아다니는 사이에 바람을 피웠다네. 내가 번 돈은 사내놈한테 다 날리고 말이지.」
    「......」
    「아들놈은 제 어미한테서 돈을 사기쳐간 사내놈을 찾아가 칼로 찌르고 집안을 뒤져 값나가는 물건을 가져왔지. 사기당한 돈의 100분의 1도 안되었지만 말야.」

    그리고는 오윤수가 벌컥이며 막걸리 잔을 비우더니 긴 숨을 뱉는다.

    「정상이 참작되었지만 찔린 놈이 중상이라 1년형을 받았어. 그러자 집안이 개판이 되었지.」
    「......」
    「그래서 내가 집을 나온거야. 아들놈이 대전 교도소에 있어서 내가 이 근처에서 벽지 작전을 하는거라네. 면회를 가기 쉽게 말야.」
    「아저씬 훌륭하세요.」

    겨우 그렇게 말한 정기철이 막걸리 잔을 들고 한숨에 마셨다.
    그러자 지그시 정기철을 보던 오윤수가 묻는다. 

    「내 딸 어때?」
    「미인입니다.」
    「똑똑해.」

    바로 말을 붙인 오윤수가 길게 숨을 뱉고나서 묻는다.
    「내가 지난번에 업보 이야기를 했지?」
    「예, 아저씨.」
    「자네하고는 얽혀져 있는 느낌이 들어.」

    그러더니 턱으로 정기철의 저고리 주머니를 가리켰다.
    「잘 간직해. 억지로 만들어서 되는 건 아니지만 말야.」
    「예, 아저씨.」
    해놓고 정기철이 오윤수를 똑바로 보았다.

    「제 아버지는 3년 전에 회사 부도를 맞고 매일 술로 사세요.」

    오윤수의 시선을 받은 정기철이 얼굴을 찌푸리며 웃는다.

    「아저씨하고 많이 비교가 돼요. 글고,」
    어깨를 편 정기철이 말을 이었다.
    「아저씨를 만난 것이 아저씨 말씀처럼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 같지가 않아요. 아버지하고 너무 비교가 되거든요.」

    그렇다. 오윤수와 매일 만나면서 자꾸 아버지가 떠올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