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사판에는 온갖 부류의 인간이 모인다.
전과자는 흔해서 명함도 못내밀고 전직 교수, 은행원, 사장, 금광 개발업자까지 있다.지금 정기철 옆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있는 오윤수가 바로 금광업자다. 작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칼라만탄 섬에 들어가 금광을 찾다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갑자기 벽지를 바르게 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저기. 정일병. 자네 언제 귀대 한다고 했지?」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은 오윤수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면서 묻는다.아파트 거실 안이었다. 오후 6시 반쯤이었는데 그들은 지금 저녁을 시켜먹고 쉬는 중이다.
「예. 20일 휴가 받았으니까 앞으로 일주일 남았네요.」
날짜를 꼽아 본 정기철이 대답했다.문을 활짝 열어놓은 아파트 복도에는 최씨 부부가 벽에 기대앉아 있다. 오늘은 그들까지 넷이 한팀이다. 오늘 50평형 한 채 벽지 공사를 끝내고 지금부터 38평형을 내일 새벽까지 마칠 작정인 것이다.
담배를 입에 문 오윤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자네, 여자친구 있나?」
「없습니다.」
「정말야?」담배 연기를 길게 품은 오윤수가 말을 잇는다.
「정말이라면 내가 하나 소개시켜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허, 별종이네. 여자 소개시켜 준대도 싫다니.」쓴웃음을 지은 오윤수가 거실 벽에 등을 붙이고 앉더니 두 다리를 뻗었다.
「난 작년에 금광 찾다가 다섯 번째 망했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마누라가 더 이상 못견디겠다고 해서 이혼 서류에다 도장 꽝 찍고 나왔네.」같이 일한지 열이틀만에 오윤수가 내력을 털어놓은 것이다. 정기철은 자신이 해병이고 첫 휴가 나왔다는 것밖에 말하지 않았다.
오윤수가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는데 마치 남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자식이 셋 있는데 큰딸은 2년 전에 결혼을 했고 둘째인 아들놈은 강도 상해죄로 지금 교도소에 있어. 그리고 막내딸은 대학 중퇴하고 직장에 다니지.」그리고는 오윤수가 정기철에게 물었다.
「정일병, 자네 몇 살이야?」
「스물둘입니다.」
「그럼 내 막내딸하고 동갑이군.」
「......」
「애비가 그놈들 자라는걸 못보고 맨날 금 캔다고 돌아다녔어. 그러다 다 때려치우고 올해 초에 벽지 기술을 배워갖고 이렇게 사는거야.」문득 아버지 정수용의 얼굴이 떠오른 정기철이 외면했다. 정수용에 비교하면 오윤수는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성품이다. 제 아들이 강도상해로 교도소에 가 있다는데도 남의 일처럼 말한다. 무책임한 성품은 아닌 것 같다.
그때 오윤수가 말을 잇는다.
「그거 아나? 사람 운명은 갑자기 바뀌는 것 같지만 절대 아냐. 그 전에 신호가 온다네.」
정색한 오윤수가 손가락을 권총처럼 만들더니 앞쪽을 겨눴다.「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뿐야. 그것은 무슨말인고 하니,」
오윤수의 눈동자 초점이 정기철에게 맞춰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 업보가 쌓여간다는 말이야. 내가 지금 이렇게 벽지 바르는 일을 하는 것도 그 업보라니까.」인과응보 또는 세옹지마라는 말 같다.
정기철은 성실한 학생같은 표정을 짓고 머리를 끄덕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