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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식이.」
머리를 든 정수용이 말했지만 곧 시선이 돌려졌다.그때 다가간 정기철이 정수용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아빠, 밥부터.」
이제는 허리를 당겨 걸으면서 정기철이 말을 잇는다.
「술 사왔으니까 밥먹고 나하고 같이 한잔 해.」정수용의 몸은 가벼웠다. 60키로도 안되는 것 같았으므로 정기철은 가슴이 찡해졌다.
식탁에 앉은 정수용은 처음 몇 술은 깨작거리는 것 같더니 입맛이 돌아왔는지 퍽퍽 떠먹는다. 그리고는 밥을 삼분지이쯤 먹고 나서 수저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다.」
「내 찌개 솜씨 어때?」
정기철이 묻자 정수용은 표정없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맛있다.」
「상 치우고 술상 봐올게.」그러자 정수용이 일어나 다시 소파로 다가간다. 허리는 굽었지만 이제 걸음이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정수용의 나이는 올해로 52세. 아직 중년의 초반인데도 10년은 더 나이들어 보인다.
대충 식탁을 치운 정기철이 쟁반에 소주와 안주를 담아들고 다가갔을 때 소파에 누웠있던 정수용이 몸을 일으켰다.
「너, 엄마 만났냐?」
먼저 술병부터 쥔 정수용이 물었으므로 정기철은 머리만 끄덕였다.
「민화는?」
정수용이 술병 마개를 뜯더니 서둘러 잔에 술을 따르면서 묻는다. 손이 떨려서 술잔 밖으로 술이 흘렀다.잠자코 그것을 보면서 정기철이 대답했다.
「만났어.」
「그놈, 집 나간 것 알지?」
「들었어.」
해놓고 정기철이 술병을 들어 제 잔에 술을 채우면서 묻는다.
「민화 회사에는 왜 찾아 간거야? 술마시고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면서?」그때 한모금에 소주를 삼킨 정수용이 갑자기 빈손을 휘둘러 정기철의 뺨을 쳤다. 정통으로 뺨을 맞았기 때문에 철석 소리가 났다. 충격에 머리가 한쪽으로 돌아갔지만 정기철이 똑바로 정수용을 보았다. 정수용과 눈이 마주쳤다.
「아빠, 내가 잘못하면 때려. 다 맞을게.」
술잔을 든 정기철이 한모금에 소주를 삼키고 나서 정수용을 다시 보았다.
「지금은 내가 건방지게 굴었기 때문에 때렸겠지. 다 이해해.」
그때 정수용이 다시 잔에 술을 채우더니 훌쩍 마신다. 안주는 손도 대지 않았다.정기철이 가만 있었더니 정수용은 연거푸 술을 마셨다. 두잔이나 더.
정기철이 말을 잇는다.
「민화한테 찾아가지 마. 엄마한테도. 둘 다 열심히 살고 있어. 아빠 원망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야. 나도 그래. 아빠를 좋아했고 지금도 그래.」잠깐 말을 멈췄던 정기철이 외면했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정수용은 소주를 두잔 더 마셨다. 한병을 순식간에 다 비우더니 술병을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정기철은 심호흡을 하고나서 정수용을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때 아빠가 날 데리고 낚시 간 적이 있어. 그때 기다리는 것에 짜증을 내는 나한테 아빠가 뭐라고 그랬는줄 알아? 욕심 부리지 마라. 차분하게 기다리면 꼭 온다. 그랬어.」정수용이 술병을 찾으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 뒤에 대고 정기철이 말했다. 한쪽 뺨이 벌겋다.「우리가 아빠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했는 줄 알아? 아빠는 모르고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