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미널에서 전철을 바꿔타고 수원역 근처 커피숍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쯤 되었다.
「오빠.」
출입구쪽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여동생 정민화가 활짝 웃는 얼굴로 정기철을 맞는다.정민화는 작년에 여상을 졸업하고 수퍼마켓의 경리로 취직해 있다. 정기철이 웃음 띤 얼굴로 다가가 앞에 앉는다. 정기철이 조금 무뚝뚝한 오빠지만 사이는 좋다. 작년 2학기 등록금이 모자랐을 때 정민화가 적금을 깨어 보태준 적이 있었는데 정기철이 겨울에 알바를 해서 갚았다.
「너, 일하다 말고 왔겠다?」
정기철이 묻자 정민화는 그냥 웃기만 하고 되묻는다.
「엄마 만났더니 뭐래?」
「잘 놀라면서 나한테 이걸 주던데.」주머니에서 접혀진 봉투를 꺼낸 정기철이 정민화에게 내밀었다.
「이거 너 써. 난 필요없어.」
「미쳤어?」정색한 정민화가 몸까지 뒤로 젖히면서 눈을 흘겼다. 입맛을 다신 정기철이 다시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는 정민화를 보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별 일 없다고 하던데, 어때?」
그것을 물으려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정민화를 불러 낸 것이다.
정민화도 예상하고 있었던지 똑바로 정기철을 보았다.
「안좋아.」
「어떻게?」
「맨날 술이야. 그래서......」
정기철은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정민화의 말이 이어졌다.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했는데 난 집나온지 열흘 쯤 되었어.」
「......」
「지금 친구하고 같이 자취하고 있어.」
「......」
「오빠도 알지? 연옥이.」
「......」
「그동안 아빠가 회사에 두 번이나 찾아왔는데 두 번째는 점심때인데 술에 취해서 왔어. 매장 앞에서 소리 지르다가 경비한테 끌려갔어.」그 순간 하얗게 굳어져있던 정민화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창피해서 죽고싶었어.」
「......」
「오빠,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억양없는 목소리로 물은 정기철이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아버지 정수용은 3년 전만 해도 중견 전자 업체의 공장 총무부장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부도를 맞자 회사에 담보로 넣었던 아파트까지 은행에 압류 되고나서 세 식구에게 남은 것은 수원 교외의 얻은 방 두 개짜리 임대주택 전세금 2천 뿐이었다.
그 후부터 정수용은 매일 술병을 끼고 살았다. 어머니 김선옥이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면서 정기철을 대학에 보내고 정민화를 졸업시켜 직장에 넣은 것이다.
「오빠, 나 집에 들어갈까?」
하고 조심스럽게 정민화가 물었으므로 정기철은 머리를 저었다.
「아냐. 그대로 있어. 내가 봐서 알려줄테니까.」
「오빠 휴가 왔는데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미안해.」머리를 숙인 정민화가 테이블 위의 물잔을 내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어제 엄마 연락을 받고 오빠가 불쌍해서 울었어.」
「나, 미치겠네.」쓴웃음을 지은 정기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정민화를 노려보았다.
「그동안 이게 대갈통이 커진 시늉을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