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 행사로 진행되는 FC바르셀로나의 내한 친선경기가, 호셉 과르디올라(39) FC바르셀로나 감독의 '오만한 언행'으로 인해 '친선'은 커녕 양국간 '앙금'을 쌓게 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에 앞서 한국 K-리그 올스타팀 사령탑을 맡은 최강희 감독과 주장 김상식 선수,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가브리엘 밀리토가 차례로 나와 이번 친선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한 직후에 나온 발언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메시 출전 불가"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감독의 입에서 떨어지자 국내 취재진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던 기자회견장은 일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국 취재진은 물론 스페인에서 온 언론사 기자들 역시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감독의 발언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제일 당황한 사람은 주최 측인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과 FC바르셀로나를 국내로 초청한 프로모터 (주)스포츠앤스토리 정태성 대표. 정 대표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 앞으로 뛰어나와 "감독의 발언은 당초 계약에 위배된 것"이라며 "바르셀로나 이사진을 설득해 전반전만이라도 메시를 뛰게 하겠다"는 약속을 건넸다.

    사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메시의 경기 출전을 의심하는 언론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스페인 대표선수들이 빠져 다소 김이 새긴 했지만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메시의 출전만으로도 이번 친선경기는 국내외 취재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3일 오후 6시부터 전개된 K-리그 올스타팀의 공개훈련 때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언론사들은 7시 양팀 대표진이 참석하는 공식 기자회견이 임박해오자 경기장 지하에 마련된 인터뷰룸에 빼곡히 들어앉았다.

    "바르셀로나라는 강팀을 맞아서 부담스러운 점은 없느냐"란 취재진의 가벼운 질문에 한국의 최강희 감독이 "나도 그 점이 원망스럽다"며 재치있게 화답하는 등 분위기는 무척 밝았다.

    올스타팀의 주장을 맡은 김상식은 "만일 본인이 메시를 막는다면 어떤 전략을 내세울 것인가?"란 질문에 "어떤 선수라도 메시를 막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일 경기에서 메시 한 명을 막는 게 아니라 바르셀로나 팀 전체를 수비하는 것"이라며 나름의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대표해 회견장에 자리한 가브리엘 밀리토는 스페인 대표들이 빠져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을 의식한 듯 "한국 팬 여러분께서 반드시 알아주셔야 할 점은 우리가 내일 경기에서 100%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하는 등, 여느 친선경기와는 달리 전력으로 멋진 경기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밝혀 내일 열릴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  ⓒ 박지현 기자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의 입에서 엉뚱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기자회견장은 돌연 냉랭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거침이 없었다. "한국에 도착한 메시가 매우 피곤해 보였다. 내일 경기에서 얼마나 기용할 것인가?"를 한국 취재진의 물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원칙적으로 메시는 훈련만 하고 내일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답형의 대답을 내놨다. 메시의 출전을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출전 시간을 묻는 질문이었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아예 "메시를 내보내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해 취재진을 당황케 했다.

    이날 과르디올라 감독은 "한국 축구가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다"는 립서비스 발언을 곁들였지만 "메시도 없고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도 없는데 내일 경기의 키플레이어가 누구냐"는 질문에 "모든 선수들이 다 키플레이어"라는 등, 시종 성의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내일 경기에 메시와 밀리토의 출전 여부가 불확실 한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란 물음에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황당한 말을 늘어놓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한국 취재진이 '팬들을 위해서라도 내일 경기에서 메시를 뛰게 할 계획이 정말 없는지'를 다시한번 물어보자, 그제서야 "메시가 이전 시즌을 마치고 프리 시즌을 맞아 첫 날만 훈련을 진행한 상태"라며 "컨디션 저하로 부상이 염려돼 뛰게 할 수 없다"는 출전 불가 사유를 설명했다.

    선수의 안위를 염려하는 감독의 입장을 이해할 순 있어도, 수교 60주년 기념 행사로 치러지는 친선경기에 바르셀로나의 간판급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감독의 발언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자, 메시의 출전을 기다려온 다수의 팬들을 '능멸한 처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대국과의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있는 공인으로서 지극히 감정에 치우친 발언을 내뱉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같은 돌발행동에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츠앤스토리의 정태성 대표 역시 "감독의 사견이라고 믿고 싶다"며 당항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계약서에 메시가 최소 20~30분 이상 뛰도록 명시돼 있다"면서 그 부분에 큰 금액이 걸려 있는데 이렇게 사전에 협의되지도 않은 발언을 상대팀 감독이 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 K-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내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가운데). ⓒ 박지현 기자
    ▲ K-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내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가운데). ⓒ 박지현 기자

    바르셀로나의 안하무인적 태도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경기장을 나서기 전 출전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는 주최 측의 설명과는 달리 메시를 비롯,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일언반구도 없이 썰물처럼 인터뷰장을 빠져나간 것.

    기자회견 직후 논란이 이어지자 주최 측은 한국 취재진들에게 "메시 등 주요 선수들이 나와 이날 발생한 해프닝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고 전달했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전 메시를 포함한 선수들이 취재진들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넬 것이라는 말에 다시한번 취재진은 주최 측이 설치한 포토존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측의 거부로 메시의 기자회견은 무산됐고 단지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 선수들을 촬영하는 포토라인만 설치됐다.

    한참 만에 나타난 메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채 아무런 말도 없이 경기장을 나섰는데 메시 외 다른 선수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한결 여유롭게 버스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여 묘한 대조를 이뤘다.

    4일 새벽 한국 취재진에게 메시와 즐라탄의 경기 출전이 성사됐다는 소식이 타전됐지만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매체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대부분 기자회견장을 뒤집어 놓은 바르셀로나의 독선적인 자세에 포커스를 맞춰 기사를 타전하는 분위기.

    이날 취재 현장에 참석했던 한 기자는 "메시라는 특급스타를 보호하려는 의지는 높이 살 만 하다"면서도 "높은 대전료를 받고 국가대표에 준하는 자격으로 방문한 이상 팬들에게 최선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이같은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팀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픔마저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