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PD수첩'은 지난달 29일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을 방송, '민간인 사찰' 대상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김종익(56) 전 KB한마음(현 NS한마음) 대표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날 PD수첩은 국가 기관인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평범한 은행원 출신 사업가인 김씨를 사찰한 것을 문제 삼으며 김씨의 자택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 영상을 내보냈다.

    ◇네티즌 "책이름에 모자이크 처리…난생 처음 봐" = 그러나 방송 직후 정작 내용보다는 김씨의 뒷편에 있던 서재가 주요 부문이 모자이크 된 채로 방송된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다름 아닌 책꽂이에 있는 책들 중 일부가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뿌옇게 처리돼 방송된 것이다.

  •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책이 모자이크 처리된 경우는 태어나 처음본다", "사람 얼굴도 아닌데 흐리게 편집을 한 게 납득이 안간다"는 반응을 보이며 "도대체 어떤 책들이길래 제목을 가렸는지 궁금하다"는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같은 의문은 금새 풀렸다. 방송 이후 각종 포털사이트 게시판과 트위터를 통해 네티즌들이 방송 중 제목이 가려졌던 책들을 나열, 김씨의 서재에 담긴 비밀을 풀어 헤친 것.

    인터넷 상에 공개된 김씨의 불온(?) 서적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중국 현대사 ▲현대 북한의 이해 ▲혁명의 사회이론 ▲동학혁명의 연구 ▲조선 로동당 연구 ▲한국 민중사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 ▲국가 보안법 연구 ▲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 기타 등등.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이 애독서? = 상당수가 사회주의와 노동운동, 북한에 관련된 책들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책들을 소지하고 있다고 해서 김씨의 사상이나 전력을 의심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 있다.

    문제는 김씨가 일관되게 국가 정책에 반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리고 좌파 진영에 몸을 담은채 지난 정권 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는 점에서 김씨의 사상이 온건한 진보가 아닌 극렬 좌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서적 중에서도 '체 게바라 평전'이나 '자본론' 등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책은 학생들이나 지식인 계층에선 한번 쯤 읽어볼 만한 필독서로 치부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김일성과 민주항일전쟁'이나 '국가 보안법 연구', '조선 로동당 연구' 같은 책들은 일반인에게 필요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참고하더라도 북한학이나 특정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 외에는 특별히 소장할 이유조차 없는 책들이다.

    따라서 소유한 서적 리스트를 볼 때 김씨를 '평범한 은행원'으로 간주하는 것 역시 성급한 판단이라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노동운동가' 故 김종배와 형제지간 = 사실 김씨는 지난 1999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동운동가 고 김종배씨의 셋째 형이기도 하다.

    성균관대 역사교육학과에 재학 중 위장 취업 등으로 노동운동을 하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조직하고 정책국장 등으로 활동했던 김종배씨는 사범대 학생회장 시절부터 전방입소거부 투쟁 등을 벌여왔고 1997년엔 공공연맹준비위와 공공연맹에서 정책국장과 대외협력국장, 교육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같은 '가족력'과 김씨의 행동반경·대인관계 등을 고려하면 지금껏 김씨가 사회적 활동과 더불어 정치운동을 은밀히 벌이는 일종의 '이념적 투사 활동'을 병행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PD수첩 역시 김씨의 이같은 편향된 사상 흔적이 노출되지 않도록 일종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도서 목록을 가렸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에 물든 좌파지식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김씨의 순수성이 훼손될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한(?) 지식인이자 평범한 은행원 출신 사업가가 정부로부터 난데없이 불법 사찰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PD수첩은 해당 프로그램에 모자이크 처리를 덧입혔고, 예상대로 방송을 접한 다수의 시청자들은 정부의 공권력 남용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김씨의 호소에 동정표를 던지는 결과가 초래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