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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구랍 31일 새로운 새해 인사법(?)을 만들었다. 2009년 마지막 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사를 나누지만 여야 의원들은 상대에 욕설을 퍼붓고 비웃은 뒤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준예산 편성이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이날 가까스로 새해 예산안을 처리한 국회의 하루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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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랍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항의속에 심재철 예결위원장이 발언대가 아닌 속기록석에서 새해 예산안 심사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단독처리를 계획한 한나라당은 민주당인 점거 중인 예결위회의장이 아닌 국회 245호 회의실로 회의장을 변경해 단독 통과시켰다.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김성조 정책위의장, 심재철 예결위원장, 김광림 예결위 간사 5명만이 '기습작전'을 사전에 알고 있을 만큼 철통 보안 속에 진행한 결과다. 예산안 처리까지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안됐다. 이때 시간이 오전 7시 24분.
이 시간부터 한나라당은 최종 관문인 본회의장으로 집결했다. 안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 출결 상황을 시간별로 체크했고 회의장에 입장한 의원은 퇴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본회의 개회 시간을 오후 2시로 정한 한나라당의 예산처리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의 법적근거를 제공할 예산부수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막히며 오전 7시 30분경부터 본회의장에 입장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14시간을 회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당 원내부대표단이 본회의장 출입문을 지키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의원들은 점심과 저녁을 도시락으로 대신했고 원내대표단은 시간마다 본회의장 의원의 출결 상황을 체크했다.
회의장의 의원들은 미리 준비해 온 책과 신문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고, 잠을 청하며 13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냈다. 직을 걸고 예산안 연내 처리를 약속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오후 8시 개회를 예고하면서 회의장은 다시 분주해졌다.
오후 7시 41분이 되자 원내대표단이 다시 회의장 안의 의원 출결 상황을 체크했고 회의장 밖에 있던 일부 의원까지 모두 회의장 안으로 집결시켰다. 7시 43분 원내대표단은 소속 의원들에게 '8시 본회의 참석'이란 문자를 보내 출석을 재차 요구했다. 2분 뒤인 7시 45분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이 회의장에 재입장했고 의장실 관계자가 본회의장 상황을 체크한 뒤 7시 59분 김 의장이 회의장에 입장하며 예산안 처리의 서막을 알렸다.
회의장 밖에서 대기 중이던 민주당 의원들이 7시 56분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입장하면서 여야 간 욕설과 비아냥 몸싸움도 시작됐다. 대기 중이던 국회 경위들이 민주당의 대형 플래카드를 뺏으려 하자 경위와 의원들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경위들을 돕자 몸싸움은 여야 의원 간 충돌로 번졌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비례대표. 초선)은 차 의원을 향해 "네가 국회의원이야" "더러운 자식" "저건 경위야" 등의 욕설을 쏟았고, 이를 지켜본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최 의원을 향해 "초선이 감히 재선 의원한테…"라고 소리쳤다. 여야 의원들 간에도 "X새끼야" 등의 욕설이 한동안 오갔다.
대형 플래카드를 뺏긴 민주당 의원들은 곧바로 의장석 아래 단상을 점거한 뒤 "김형오는 사퇴하라" "불법여당 한나라당은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반복해서 외쳤다. 20여 분간 계속된 구호가 점차 작아지자 좌석에 앉아있던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목소리가 작아진다. 더 크게 해라"라고 비꼬기도 했다.
8시 17분이 돼서야 김 의장은 개회 선언을 했고 이때부터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이 모두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8시 48분 예산안이 통과되자 본회의장을 빠져나갔고 일부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 정 대표, 허태열 최고위원 등과 악수를 나누며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퇴장했다. 나가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고생했어" "수고 많았어"라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퇴장 뒤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들만 남은 상황에서 법안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9시 40분 김 의장은 산회를 선포했다. 이날 예산처리 작전을 계획한 안 원내대표는 산회 뒤 "14시간 동안 회의장 밖을 나가지도 못하게 해 너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일부 친이계 의원만이 "괜찮아요" "잘했어요"라며 박수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