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 교수,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 많이 하던데 이제부터 맛 좀 봐!"

    196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덕우 당시 서강대 교수를 재무부 장관에 임명하면서 던진 말이다. 후일 국무총리까지 지낸 남씨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내가 정부 정책을 비판한 글을 종종 쓴 것은 사실이지만 내 딴에는 어디까지나 건설적이고 온건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남 전 총리는 지금도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존중한다.

  •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남덕우 전 국무총리 ⓒ 뉴데일리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남덕우 전 국무총리 ⓒ 뉴데일리

    남 전 총리는 재무장관 발탁 이후 경제부총리를 지내면서 70, 80년대 대한민국 압축성장을 이끌게 된다.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남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서강대 교수들이 중용되면서 '서강학파'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노무현 정권이 "과거 정부 경제개발계획은 압축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양극화 심화의 역사적 뿌리가 됐다"고 비난했지만, 남 전 총리는 "뭐 그 대학생 수준의 글을 굳이…"라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남 전 총리는 국무총리 퇴임 후 한국선진화재단을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남 전 총리는 단체의 이념적 구분을 따지는 시각에 대해 "보수다 진보다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후진적인 것을 어떻게 선진화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40년이 지난 2009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경제정책과 역점 사업인 '녹색뉴딜'을 신랄하게 비판해오던 개혁성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한나라당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국민통합형 파워내각"이라고 평가했다. 정 총리후보자는 17대 대선과정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대선후보로 러브콜을 받았던 인물이다.

  • ▲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 뉴데일리
    ▲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 뉴데일리

    "지금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잘 보필해서 강한 경제의 나라, 통합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 후보자는 총리지명 수락 배경을 이렇게 정리했다. 그는 "구체적 정책에 대해 그간 경제학자로서 이런저런 비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통령과 나는 기본적으로 경쟁을 중시하고 촉진하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했다. 또 '균형있는 경제살리기'를 견지하면서 이 대통령에게 "바른말은 하겠다"는 소신을 표했다.

    정 후보자 지명에 민주당은 발끈했다. '우리편(반MB)'이라 여겼던 정 후보자에 대한 배신감에, 잠재적 대권주자를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더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는 4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위민(爲民) 경제학자인 정 전 총장의 총리 내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통해 "정 후보자 내정을 계기로 정치권이 더는 우리 사회 분열과 반목을 증폭시키지 말고 사회적 합의와 약속, 신뢰를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대표적 비판자'를 국정 2인자에 발탁한 배경을 설명했다. '통합과 화합, 개혁과 변화'라는 원칙에 따른 이념을 떠나 국익을 위한 인선이라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와 정 후보자의 정책적 거리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파격' '의외'라는 평가와 '중도실용'에 대한 기대가 섞인 이번 총리 인선에는 "정 총장, 그동안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 많이 하던데 이제부터 맛 좀 봐!"라는 이 대통령의 주문이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