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경재 전 의원  
    ▲ 김경재 전 의원  

    편집자註) 지난 13일 여의도 강변의 한 빌딩 사무실에서 김경재 전 의원을 만났다. 김 전 의원은 1970년대와 80년대 YS·DJ와 함께 재야 민주화운동을 이끌었으며, 1987년 DJ와 함께 귀국하여 15대·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1997년 김대중 선대본부·2002년 노무현 선대본부에서 연속으로 홍보책임자로 활동하며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노무현 탄핵' 당시 민주당 지도부에 있으면서 조순형 대표와 함께 탄핵소추안 가결을 주도한 악연 때문에 노무현 및 열린우리당과 갈라섰고, 18대 총선을 앞두고 30여년간 몸담았던 민주당을 탈당했다. 최근에는 미국 망명 시절 자신이 집필했던 '김형욱 회고록'의 쇄신 완결판 '혁명과 우상(전 5권)'을 출판, 서점가와 정치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문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벌써 다녀오셨지요?

    문병 안 갔습니다. 너무 형식적인 것 같아서... 떨어져있으면서도 안위를 지켜보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DJ를 지지했건 반대했건 그가 한국사의 거목의 한 분이어서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치권이 그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합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핵문제 때문에 미묘하고, 그가 대북관계에 있어서 분명한 견해와 태도를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훨씬 더 젊은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지 얼마 안 돼서 또 한 분의 대통령이 위독하시다고 하니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적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분이 다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있느니 안타깝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갖는 거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YS의 문병이 하나의 기폭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발간한 ‘혁명과 우상’ 제 5권을 쓰면서 “우리에게는 대통령 복이 없는가?”라는 에필로그를 썼습니다. 거기서 DJ와 YS의 진정한 화해를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화해하지 못한 것이 권위주의 군사정권을 5년 더 연장하는 역사적 원죄로 이어졌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 앙금을 털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7월 25일경에 상도동에 화해를 촉구하는 메모와 함께 제가 쓴 책 한질을 보냈습니다.

    김 의원의 메모가 YS의 DJ 문병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언론에는 “YS 측근들의 강경한 진언이 있었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YS가 했다”로 되어있는데 제 메모가 분명 거기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는 YS의 DJ 문병에 대해 ‘역사적인 화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데 민주화운동을 두 분과 함께 하신 김 의원께서도 이 같은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미 CBS를 통해 YS의 화해 방식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언론의 평가는 어찌 보면 현실을 반영했다는 것 보다는 DJ와 YS의 화해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망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화해의 한 쪽 당사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부인을 만나 덕담과 격려의 말을 주고는 화해했다고 하면 좀 엉뚱하지 않습니까? 두 분의 화해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아쉽습니다. DJ를 만나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려운 만큼 ‘화해에 대한 대국민 메시지’ 정도 들고 가서 발표했으면 좋았을 텐데... 화해의 형식이 그렇게 되서는 안 되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의미 있는 출발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아쉽습니다. 이처럼 일방적인 모양새 말고 좀 더 사려 깊고 적극적인 언행이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많은 언론이 표현했듯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라이벌 관계’에 대해 YS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대승적으로 화해하고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지난 13년 동안 DJ는 단 한 번도 YS의 공격에 대해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DJ 입장에서는 상당한 내공을 보여준 것이지요. 그것은 분명 높이 평가받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DJ와 YS의 갈등에 있어서 YS가 일방적으로 나갔던 부분도 있었던 만큼 진정한 화해를 위한 세레모니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YS가 역시 멋있다”는 이야기로 회자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DJ 유고시에 YS가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참된 화해를 국민들 뇌리에 각인시켜준다면 “아, 두 사람이 정말로 화해했구나.”라는 감동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YS가 어떻게 대응할지 유심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여 북한에 억류되었던 여기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억류된 유씨 석방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DJ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지적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DJ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좌파세력 전체의 아킬레스건이지요. 이미 구소련 붕괴로 인해 서유럽의 공산주의는 자체 개량과 발전을 했습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로 거대한 연방을 해체시켰다며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공산주의 제국을 해체하는 작업을 평화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위대함이 있습니다. 동서독 통일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말이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나 독일의 슈뢰더 정도로 상당히 개량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북한만 김일성 절대주의와 유일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의 김일성 세습체제 때문에 남한 좌파 지식인들까지도 사고의 경직성에 딱 걸려든 것이지요. 유능하고 창의적인 좌파가 있어야만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들 대다수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 놀랄만한 침묵을 하고 있는데 아마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좌파세력 전체의 비극입니다.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대한민국 좌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국 좌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이 좌파의 구심점과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38년간에 걸친 민주당 당원 생활을 작년에 청산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통합했을 때에 저는 예전의 민주당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기대했는데 국회의원 선거 공천을 열린우리당 출신들이 주도하면서 공천심사 대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당시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자랑스럽게 김경재 전 최고위원을 심사에서 배제했다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탄핵을 주도했기 때문에 뺐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결단을 갖고 아예 심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숙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대세를 거역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떠났습니다.

    그 후의 민주당의 일련의 행태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너무 큰 차이가 났습니다. 민주당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좌파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정말 막막합니다. 현재 좌파 전체는 마치 공중분해라도 된 듯이 지리멸렬한 상황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에서 다 받아들이는 아이템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우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좌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 그 무게중심을 소득의 분배와 기회의 평등 쪽에 두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교육을 못 받고 좋은 직업을 못 갖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국가가 끊어줌으로써 선순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개방성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신분상승이 가능한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은 이 같은 악순환을 끊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비쳐지고 있는 이미지는 이와 사뭇 다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보수 세력이 관심을 가져야만 지지층도 넓혀나갈 수 있고, 이 대통령 통치기반도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대통령이 중도를 계속 이야기는 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현재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데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재산 사회 환원 등도 필요하지만 인사정책에 있어서 부자 중심의 편향성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4대강 살리기도 강을 살리자는 기본 취지는 좋지만 특정지역의 특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어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MB 국정운영에 대해 큰 틀에서 ‘잘 하고 있다’는 취지로 들리는데요?
     
    경제정책을 보나 외교정책을 보나 이 대통령이 특별히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저는 MB의 정책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시각과 능력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좌우 이념이 대립하고 있고, 영남과 호남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에는 균형 있는 정책기획자가 있어야 합니다. 정책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지역적 연관성을 따지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MB가 광우병 처리에 있어서 서툴렀다는 점입니다. 좀 더 빠른 시점에 직접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서 진정성을 갖고 호소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오랜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해서 광우병 문제에 있어서 확신이 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문제와 반미감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조금 긍정적으로 본다면 한국인들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선진국의 문턱으로 가다 보니 먹거리에 대해 보통 사람들 발언권이 높아졌다는 것이고 강력한 시민의식이 성장한 징표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선동가들이 이를 반미로 몰아가면서 청와대를 엎어버리려고 했던 거지요. 너무 지나쳤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정권 퇴진운동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지요. 아이템이 달라야 합니다.

    그렇지만 MB정부 입장에서도 분명 전략적인 실책이 있었습니다. “소고기가 안전하다, 아니다”의 논쟁에 뛰어들기 보다는 식품위생법을 어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단호함을 보여줌으로써 얼마든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미국산 소고기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미국 본토에서 왜 광우병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살면서 정치현장을 보았는데 식품법 위반에 대해 그 주범들은 자신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감옥에서 보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사면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이 감히 먹는 것 갖고 장난을 치겠습니까?

    제가 MB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바로 자원외교와 통상외교입니다. 우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고 미국 및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실수 없이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문제점은 내치에 있어서의 균형 감각입니다. 특히 인사의 실패가 가장 뼈아픈 대목입니다. 흠결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법치에 대한 신념을 갖고 부정과 비리에 대해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검사나 판사들은 사회생활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인들의 일상생활 중 하나인 연회(party)에도 못갑니다. 스스로를 로비에 아예 노출조차 안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심과 자세를 가진 사람이 공직자 중 많아야 합니다.

    미디어법 통과에 반대하며 거리로 뛰쳐나간 민주당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미디어법 개정에 있어서 민주당이 걱정하는 부분에 분명 일리는 있습니다. 재벌과 특정언론의 독과점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요. 그러나 대의민주정치의 대원칙은 어디까지나 ‘다수결’입니다. 저는 의정활동을 하면서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국회 본회의장 단상 점거에 동원된 적이 없습니다. 토론은 서로 간에 치열하게 하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저의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여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발언을 한 것 때문에 국회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탄핵소추안을 가결 통과시켰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당시 열린우리당과 일부 언론은 ‘의회의 쿠데타’라고 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여 뽑힌 국회의원들이 다수결로 통과시킨 탄핵소추안이 어째서 쿠데타입니까? 그 때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현재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상한 행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주도한 미디어법 개정이 그 자체로는 명분이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만든 것을 도대체 언제까지 안 바꾸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까? 여기에 민주당이 당운을 거는 것이 스스로 피곤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도 잘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민주당도 강경파가 문제지만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협상을 무조건 야합으로 생각하는 것을 고쳐야지요.

    김수환 추기경 선종 당시에도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의 경우에 수 백 만 명의 행렬이 이어진 것과 관련 우리 국민이 이 시대의 진정한 원로에 대해 갈급해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왜 이 시대의 진정한 원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요?

    대단히 안타깝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역시 반도인의 한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경우 마오쩌뚱이 아들을 한국동란에 참전시켜 전사시켰습니다. 과연 우리 지도자들 중 그렇게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들 병역비리로 장관들이 낙마하고 유력 대통령후보까지 곤욕을 치루고 낙선하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들이 우리를 어찌 볼까 부끄럽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은래, 등소평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고령이 되어 몸은 떨려도 정신은 멀쩡합니다. 실언을 안 하고 국민들과 늘 함께 호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DJ와 YS만 하더라도 민주화 시절에는 참모들과 외부인사의 지적에 대해 경청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측근들의 직언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승지만 필요로 하고 직언을 하는 간관은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거지요.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의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MB의 중도노선에 대해 좌우 양 진영 모두로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제가 놀란 것은 MB가 DJ를 문병했을 때 DJ가 민족화해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MB가 중도노선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6.15가 무효라고 해버리면 남북 대화 자체가 안 됩니다. 전임 대통령과 맺은 약속을 존중은 하지만 새 대통령 입장도 있으니 다시 대화하자는 식으로 해야 합니다.
     
    2002년 북풍사건 관련 문건을 당시 조세형 민주당 총재 권한대행이 폭로했는데 이회창씨 쪽에서 작성한 그 문건이 나중에 보니 DJ의 6.15선언과 비슷했습니다. 이회창도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정략 차원에서 그렇게 연출할 뿐입니다.

    YS의 경우 대북정책에 있어서 11번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고 하지요? 그만큼 대북문제에 있어서 진보와 보수의 구별은 애매합니다. 그렇기에 MB도 훨씬 과감한 대북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단어에 너무 구애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통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먼저 평화공존의 시대를 선포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을 정식으로 이웃국가로 인정하여 외교관계도 맺고 장사도 하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통일 정책을 완화시킨다면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통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통일문제야말로 진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통일은 탁월한 협상전략과 냉철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앉아서 이론만 이야기하면 곤란합니다. MB의 중도노선이 경제정책에서 나와야 하고 인사에도 반영이 되어야 하며 대북문제에서도 나와야 합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선대본부 홍보본부장으로 노무현 당선의 일등공신이셨지요? 노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해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습니다. 2004년 탄핵을 기점으로 한때 앙숙이 되기는 했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저는 인간 노무현을 주변 패거리들이 오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민주당 내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일들을 하고 싶은데 시어머니들이 너무 많아 맘대로 안 되니까 나가서 딴 살림 차리자고 노무현 대통령을 끌고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자기를 당선시켜준 당을 배신하는 정치적 원죄를 범했습니다.

    당시 친노세력들이 민주당을 호남 지역정당으로 매도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허위사실입니다. 당시 민주당은 영남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제1당이었습니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제주까지 모조리 1당이었습니다. 그런 민주당이 왜 지역정당입니까? 비례대표만 보더라도 한나라당은 1번부터 10번까지 호남출신이 단 한 사람도 없는데 민주당은 6명이 영남이고 3명이 이북이고 호남은 1명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지역적 대표성을 배려했습니다.

    민주당 분당을 감행하기 직전에 저도 노 대통령으로부터 열린우리당 합류에 대한 간곡한  설득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원칙이 틀려서 안 갔습니다. 그게 악연으로 이어져서 결국 노무현 검찰에 의해 11일간 구속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발언이었음에도 염치없이 구속시켰습니다.

    노 전 대통령 자살의 직접적 원인을 짐작해 보건데 저는 권양숙 여사가 정말로 노 전 대통령 몰래 일을 저질렀고 노 전 대통령이 뒤늦게 이것을 보고받고 나니 할 말이 없어서 그로 인한 정신적 갈등과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충격적인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적어도 자신만큼은 진짜로 깨끗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항심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진짜 바보 노무현입니다.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가족은 살렸지만 자신을 찍은 천 만 표에 대해서는 참으로 무책임한 일을 한 것입니다.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자살로 생애를 마감해서는 안 됩니다. 저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민주당 분당은 정말 잘못되었다”는 고백을 받고 싶었는데... 생애 마지막 순간 그 분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민주당 안에 있었다면 우리가 노무현을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잡아주었을 것이고, 그랬으면 정권 재창출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뭘 해보려고 하는 과정에서 주변 패거리들이 노 대통령을 오도했다고 봅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이들은 결코 책임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실상 그들이 노무현을 자살로 몰고 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2008년 총선에서 이들은 완벽하게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심판을 받았습니다. 수도권 지역에 친노 인사들이 상당수 공천되었음에도 당선된 인사들 중 친노 성향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최근 들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거제도가 유능한 인물이 나와서 성장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너무 감성적인 투표를 하고,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보니 돈의 위력이 발휘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금권선거로 적발되어도 ‘재수 없어 걸렸다’는 생각이 만연해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감성적 투표와 금권선거 앞에서 힘없이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저는 내각제 개헌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해산 요건을 강화시키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 문제도 해결됩니다. 선거구제는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