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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훈 조선일보 사회정책부장
쌍용차 노조 입장에서 77일간 파업 사태의 대차대조표를 뽑는다면 이쯤 될 것 같다. 새총을 쏘고 화염병 던져가며 처절하게 싸웠지만 얻은 것은 468명을 정리해고에서 구한 것뿐이다. 그 468명도 태반은 무급(無給)휴직이니 완전히 살린 것도 아니다. 468개 일자리가 적진 않지만, 이걸 얻어내려 목숨까지 담보로 걸며 전쟁 같은 그 난리를 치러야 했을까.
468명을 구하기 위해 들인 비용은 천문학적이었다. 77일간 쌍용차는 3100억원의 생산차질을, 협력업체는 2500억원의 매출 손실을 보았다. 직접 계산 가능한 것만 이렇다. 브랜드 가치며, 지역경제 타격 같은 간접 손실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직원·노조원·경찰 100여명이 부상당한 비용, 7만여명(연인원)의 경찰력을 동원한 기회비용도 있다. 전투적 노사 격돌이 연일 보도되면서 국가 이미지는 비용으로 따지기 힘들 만큼 훼손됐다. 이런 것을 다 합치면 경총 추정대로 나라 전체 손실액이 1조원을 넘고도 남는다. 77일간 하루 130억원짜리 파업을 한 셈이다.
1조원이 어떤 돈인가. 이 돈이면 매장량 6100만 배럴의 멕시코만 광구(鑛區)를 한 개 인수할 수 있고, F-15K 전투기를 10대 도입할 수 있으며, 결식아동 120만명에게 2500원짜리 점심식사를 1년 동안 줄 수 있다. 공장을 짓거나 도로를 놓으면 일자리가 몇천 개, 몇만 개는 너끈히 생긴다. 그런데 고작 '468명 구하기'라고?
나는 974명의 쌍용차 농성 노조원 중 이런 무모한 셈법에 동의한 사람은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억울하고 감정 상했어도 자기가 몸담았던 회사가 만신창이가 되길 바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강경 투쟁을 주도한 사람들의 계산은 다른 모양이다. 사태를 주도한 노조 집행부와 민주노총을 비롯한 외부 세력의 셈법은 무얼까. 1조원이 들더라도 468명을 구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수수께끼를 풀어준 것은 노동 전문가 N씨였다. 노사분규 역사에 정통한 N씨는 "그들에게 '청구서'가 날아가지 않기 때문"이란 한 마디로 의문을 해결해주었다. 강경투쟁을 주도하는 이른바 '노동운동가'들은 불법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쌍용차 이전에도 숱한 불법파업과 점거·농성·폭력 사태가 벌어져 거액의 피해를 내곤 했다. 하지만 주동자가 금전 배상을 한 사례는 많지 않다.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나중에 철회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랜드는 500여일간 홈에버 매장을 점거 농성한 노조에 대해 손배소를 취하했고, 한국전력·대우자동차판매·로템·롯데호텔·코스콤·알리안츠생명 등도 청구를 중도 포기했다. 아직 진행 중인 사건도 있지만, 세상을 시끄럽게 한 노사분규의 민사책임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결말이 났다.
드물긴 하나 한국철도공사가 전국철도노조에 30여억원을 받아낸 사례도 있다. 하지만 조합비로 연간 117억원을 걷는 거대 노조엔 푼돈일 뿐이다. 무엇보다 행위자 개인에 대한 청구가 아니니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다.
형사 책임은 어떨까. 기소된 불법파업 주동자가 장기 실형을 사는 경우 역시 드물다. 집행유예가 대부분이고, 설사 몇 달 감옥 생활을 하더라도 이 정도는 운동 경력을 빛내줄 '훈장'일 뿐이다. 황당한 쌍용차식(式) 셈법의 배경엔 이런 '면책(免責)의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번엔 달라질까. 쌍용차 사측과 경찰은 불법 주도자에 대해 엄격하게 민·형사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불법 주도자가 손실액만큼의 청구서를 받아 들게 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있을 것이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또다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기엔 우리 사회가 치른 수업료가 너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