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터뷰’(감독 변혁)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이정재는 미용 보조사 심은하를 인터뷰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이정재가 인터뷰하는 카메라 속 사람들은 실제 삶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인터뷰로 사람에게 보여질 때 사람들은 좋은 점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다. 하지만 때로는 인터뷰가 숨겨진 본능을 끄집어 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 ▲ 김지수 기자는
    ▲ 김지수 기자는 "진부한 인터뷰 질문은 없다"고 했다. 인터뷰 하는 사람의 태도와 앞뒤 맥락에 따라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 뉴데일리

    21일 서울 신사동 북까페 ‘P532'에서 만난 패션잡지 ‘보그’의 피처 에디터 김지수 기자(여·39)는 수많은 스타와 감독, 모델을 인터뷰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의 삶에 멘토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이 가진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인터뷰는 하나의 연기와 같아요. 그 사람의 숨겨진 본능 중에 꺼내고 싶은 것을 꺼내는 거죠. 제 안에도 많은 모습이 있지만 그 안에 그 사람과 가장 잘 맞는 걸 꺼내서 호흡하는 것. 그것이 인터뷰에요”

    그는 ‘진부한 인터뷰 질문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태도와 앞뒤 맥락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할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최고의 매력을 발견해 그걸 중심으로 그 사람을 표현해요. 인터뷰를 할 때만큼은 그 사람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와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탤런트 송윤아는 인터뷰가 끝난 후 그에게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알았다"며 고맙다고 인사했고, 영화배우 박중훈은 “오늘 내가 말을 많이 한다”며 “솜씨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 인터뷰로 받은 위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어

    그는 인터뷰 집 ' 나를 힘껏 끌어 안았다'(홍시 출판사)를 펴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 배우 고현정 김윤진 유지태 전도연 이미숙, 아나운서 오유경, 모델 장윤주 등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를 통해 내가 위로 받았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주고 싶었다”는 그는 위로가 필요한 '봄’, 성공을 향하는 ‘여름’, 사랑의 계절 ‘가을’, 진정한 성취를 찾아 떠나는 ‘겨울’까지 4계절로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 ▲ 김지수 기자는
    ▲ 김지수 기자는 "인터뷰어로서 나는 그 사람의 가장 이상적인 면을 연기하는, 수사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문장의 배우이기를 꿈꾼다"고 했다. ⓒ 뉴데일리

    책 제목은 코엘료가 인터뷰가 끝난 후 그를 힘껏 끌어안아줬다는 내용에서 가져왔다. “인터뷰이들이 그들의 말로 나를 힘껏 끌어안아준다는 의미기도 하고, 인터뷰 후 자아의 발견과 성취가 반가워 스스로를 힘껏 끌어안았다는 중의적 의미기도 하다”고 했다.

    # 가장 기억남는 인터뷰이 ‘천호진’
    고현정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 많아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탤런트 천호진이라고 했다. “당시 큰 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인터뷰 약속을 깨지않고 나왔어요. 또 멋진 신사라 양복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벌 밖에 없는 정장을 입고 인터뷰에 나왔다는 것도 놀라웠죠. 인터뷰에서 ‘남자다움’에 대해 질문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여러 사람을 인터뷰 하다보니 닮고 싶은 점도 많다. 소설가 오정희에게는 ‘완벽에 가까운 문체’를 닮고 싶다고 했고 김훈에게는 ‘서사적 문체’를 닮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가장 잡기 어려웠던 사람도 김훈이었는데, “흉측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매번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친히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 인터뷰에 성공했다.

    탤런트 고현정에 대해서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배우고, 할 말이 많은 배우"라고 했다. 고현정은 어떤 진부한 질문을 던져도 쏟아지는 이야기는 대단하다고 했다. 함께 촬영한 영화 ‘액트리스’(감독 이재용)에서 “우리 얘기해야 하지 않냐”며 촬영장에서 그를 끌고가 마음 가득 담았던 얘기를 쏟아내기도 했다.

  • ▲ 19명의 인터뷰를 4계절로 담아낸 인터뷰집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 뉴데일리
    ▲ 19명의 인터뷰를 4계절로 담아낸 인터뷰집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 뉴데일리

    그는 "고현정이 예전 결혼하고 나서 그림 보는 걸 좋아하고 음악 하는 걸 좋아했더니 사람들이 연기한다고 했다"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어 이혼 후 진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현정이 실생활에서 사람들에게 툭툭 말도 걸고 건드리고 웃고 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하고 본인도 너무 시원하다고 했다”며 “본인에게 감춰져 있던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윤여정 이미숙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6명의 여배우가 실명으로 출연하는 페이크 다큐(가짜 다큐) 영화에 그는 실제 ‘보그’의 김지수 기자로 출연했다.

    김지수 기자가 쓴 작가의 한 컷 – ‘사람들’

    7월의 뜨거운 여름을 당대의 여배우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액트리스(Actress)>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연기했습니다. 고현정은 여배우 고현정 역을 했고, 최지우는 한류 스타 최지우 역을 했고, 그리고 김지수는 김지수 기자 역을 했습니다. 그것은 녹음기를 통해서 듣는 내 목소리처럼 굉장히 생경하면서 흥미로웠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는 누구나 우리 자신을 연기합니다. 우리 자신의 캐릭터, 우리 자신의 페르소나. 사람은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인 배우가 노력을 통해 뛰어난 연기자가 되듯 노력하면 우리도 언젠가 나 스스로를 연기하는 뛰어난 인생의 배우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고, 배웠고, 그래서 인터뷰어로서 나는 그 사람의 가장 이상적인 면을 연기하는, 수사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문장의 배우이기를 꿈꿉니다.

    그는 앞으로 패션을 소재로 한 에세이집을 준비하고 있다. 패션이 중심인 잡지에서 일하면서 패션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패션을 통해 많은 위로를 얻었다. 한달 월급과 명품 가방 가격이 동일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곳에서 또 희망을 발견한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패션’이 세상과 본인을 연결해주는 소품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한 때 ‘워커홀릭’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여유를 찾았다. 일 외에도 다른 재미를 많이 발견했다는 그의 ‘여유’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고 인터뷰하면서 배운 ‘지혜’와 삶의 ‘보너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