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가 저물어간다. 이 정부는 국민 성원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마감하고 닻을 올렸지만 숱한 도전과 시행착오 속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개혁과 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국정 구석구석에까지 미치지 못했고, 경제 살리기를 내걸었지만 예기치 못한 국제 금융 위기에 부딪혀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미숙한 국정 운영에 기인한 혼란이 계속됐다. 그러나 2008년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향한 비전이 하나하나 구체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뉴데일리는 이명박 정부의 지난 한해 공과를 분야별로 되돌아 보며 2009년을 전망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한미 동맹 복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정권에서 소원해진 한미 관계가 상당 부분 정상화된 것은 외교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가져 양국 관계 복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1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네차례 만나며 돈독해진 관계를 세계에 과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우리는 친구(friend)"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고 양 정상간 긴밀한 유대감은 양국 관계 정상화 속도를 앞당겼다. 미국 정부가 광우병 괴담으로 어려움에 빠진 한국 정부의 추가협상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나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신속한 독도표기 원상회복 등 가시적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당초 가능성이 희박했던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과 G20 금융정상회의에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데에는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한국과 미국 정부의 친밀한 관계 복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로 평가된다.

    발전한 한미 관계는 양국이 현 수준으로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무기구매국(FMS) 지위 격상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등 한미연합 방위력 강화를 위한 합의를 가능케했다. 또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시작되면서 한국 국민들은 90일 이내 미국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됐으며, 8개월동안 미국에 머물며 공부하고 돈도 벌 수 있는 미국 연수취업프로그램(WEST)이 세계 최초로 한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실시된다. 이밖에도 청소년 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양국민간 교류는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이외에도 일본, 중국, 러시아와 연쇄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취임 첫 해 한반도 주변 4강 외교 초석을 다졌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대일 외교전략은 일본의 독도, 역사문제 도발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일본은 지난 7월에 새 중등 사회과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영토'라는 취지의 문구를 넣어 물의를 일으켰으며 현재도 외무성 홈페이지에 같은 주장을 반복해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시정요구를 받고 있다. 일본 내부 정치 사정을 감안할 때 독도와 역사 문제는 언제든 양국관계를 해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일 관계를 '성숙한 미래지향적 동반자'로 격상시킨 이 대통령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에 이어 지난 10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춘 실용외교를 펼쳤다. 양국은 한일 재계 간 협력 확대 및 부품소재산업 분야에서 기술과 인적협력을 강화하고 에너지 분야에서도 교류 활성화에 합의했다. 또 미래지향적 관계 개선을 위해 취업관광사증(Working Holiday Visa) 확대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복원된 한일 '셔틀외교'를 통해 양국간 경협은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한미, 한일 관계 정상화와 함께 중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에 이 대통령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자칫 새 정부가 한미동맹 등 전통적 관계를 중시하면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느낌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중국을 방문, 전세계인의 축제인 북경올림픽을 축하하고 동시에 사천성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위로하는 '투 트랙'으로 중국의 마음을 얻었다. 이 대통령은 "진짜 친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함께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키로 합의했다. 무역 중심에 머물던 양국 관계를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협력이 가능토록 확대한 것이다. 한중 협력 강화는 남북 관계에서도 주요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북핵 해결 및 한반도 평화증진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확인했으며 국군포로, 납북·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 협력도 이끌어냈다. 이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한 중국측의 이해와 함께 한반도 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남미서 선보인 MB표 '비즈니스 프렌들리 외교'

    지난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금융정상회의에 이어 페루를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례적인 '비즈니스 외교'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과 대통령궁에서 가진 정상회담 이후 공동언론발표에서 구체적인 한국 기업 이름이 하나하나 거론된 것.

    먼저 마이크를 잡은 가르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페루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의 철학에 동의한 뒤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보다는 인류 삶의 복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는 기술 발전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석유기업과 자동차, 가스산업 등에서 협력이 이뤄졌다"면서 "현대자동차와 삼성의 기술 뿐만 아니라 두산의 담수화 기술도 잘 알고 있다. 개발협력에 감사하고 산업기술 협력이 두 나라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가르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국기업에 높은 평가를 해줬다"면서 "개별적으로는 SK의 석유화학단지 만드는 문제.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삼성의 와이브로 기술. 현대의 자동차, 두산의 담수화 등 회사 하나하나에 대해 토론했다. 개별기업 협력 문제를 협의했고 광물자원 개발과 석유화학 문제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페루를 발전시키려는 가르시아 대통령 의지의 표현"이라고 치켜세운 뒤 "가르시아 대통령과 긴 시간 이야기를 통해 전세계 현안에 대한 동지를 얻게 됐다는 개인적 기쁨을 안게 됐다"고 만족해했다. 이 대통령과 가르시아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 친밀감을 과시했다.

    양 정상의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비즈니스 정상회담에는  청와대도 놀랐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개별 기업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이 대통령은 마치 경제사절단 단장처럼 전체 상담을 지휘하고 협상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전반적 회담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가르시아 대통령이 페루에 투자한 한국기업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해서 깜짝 놀랐다"면서 "가르시아 대통령이 한국기업을 일일이 말하며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느냐고 먼저 물어왔다"고 전했다.

    주변 4강 외교는 러시아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청와대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안정에 긴요한 주변 4국과의 협력 강화를 위한 기본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키로 했다. 관계 개선에 따라 한국이 러시아 내 대규모 경협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됐고 양국 외교부간 제1차관급 전략대화 신설 및 고위급 대화채널 활성화 등 상호 협력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 외에도 러시아의 실력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등 러시아 지도자들과의 '스킨십'도 강화, 양국 지도자 간의 이해도를 높였다.

    지난 9월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실용외교' '에너지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기간 동안 이 대통령은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사업에 지속적 협력과 수산물 채취, 양식, 가공 및 마케팅 관련 공동사업 발굴 협조와 해양생물자원 보존 및 관리에 상호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2015년을 목표로 북한을 경유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을 추진키로 하고, 명태 쿼터를 연간 2만톤에서 4만톤으로 2배 늘리는 데 러시아의 협력을 확보했다. 한반도 안정을 위한 양국간 노력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군 관련 인사교류, 군사기술 등 국방 분야에서도 양국은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주변 4강 이외에도 아시아, 유럽, 미주를 넘나들며 취임 후 11월 현재까지만 30개국 정상과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각국간의 관계 개선과 함께 상호보완적이고 전략적 관계를 다졌으며 '대한민국 CEO'로서 실리외교에 주력한 결과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기왕에 이렇게 멀리 왔으면 (외국 정상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대통령은 지난 11월 페루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의 '스킨십 외교' '세일즈 외교'를 압축해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성숙한 세계국가'로의 비전을 역설하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외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특히 지금처럼 각국 경제상황이 서로 얽혀있어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시점에 실용외교는 더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