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경북 봉화군은 흡사 전쟁터 자체를 방불케 했다. 특히 25일 시간당 40㎜ 가까운 ‘물 폭탄’이 떨어진 춘양면 일대는 영동선 철둑이 붕괴되고 멀쩡하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길이 끊기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폭우로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큰 봉화군에는 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100가구 22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주택 191채가 파손되고 농경지 곳곳도 침수 또는 유실됐으며 아직 39가구 104명의 주민이 고립돼 있다.

    최근의 집중호우는 지금까지 여러 재해대책에 적용돼 온 ‘발생빈도’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상기후로 100년 빈도의 호우가 거의 매년 발생하는 등 대형화되고 있다. 2002년 ‘루사’가 강타했을 때는 하루 동안 900㎜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고대 중국에서는 순(舜)의 선정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주 대홍수가 일어나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때 관리 우(禹)가 13년간의 노력으로 훌륭히 치수의 사업을 이루었다. 순은 자기의 아들을 제치고 우에게 제위를 넘겼다. 우도 훌륭한 선정을 폈다. 그가 죽자 백성들은 그가 지명한 후계자를 제치고 우의 아들을 후계로 삼았다. 이때부터 세습적인 왕조가 출현했으니 이것이 중국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다.

    이처럼 치수 사업은 고대로부터 한 왕조의 흥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자연재해 대책은 정부 위주의 행정 처분이 주를 이룬다. 정부 시스템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자연재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업무 체계가 분산되어 있고 각종 제한이 많다. 따라서 근원적 재해예방 및 신속한 상황 대처가 미흡하고, 체계적 복구지원 체계의 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트럭 수십 대가 우리 동네에 먹을 것을 실어왔다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우리나라 재난 피해 지원은 소유주에게 집중된다’, ‘공무원들은 실질적인 피해 주민을 만나고 피해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이내에 끝내야 하는 문서화 보고 작업에 전원 투입된다’. 이는 오랫동안 자연재난 피해지역을 조사연구한 어느 교수가 전해들은 말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우리나라의 구멍 뚫린 재난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렇듯 재해에 대한 미흡한 복구는 재난이 일어난 곳에서 또 재난이 일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원인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부는 체계적이고 항구적인 복구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관계부처에서는 과거의 수해대책 관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틀을 깨고 보다 실효적인 수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언론도 피해보도를 넘어 피해복구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과 행정 당국의 재발방지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계부처는 조기복구를 위한 예산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실의를 떨치고 일어나 새 삶의 용기를 낼 수 있는 모든 지원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 봉화군을 비롯한 전국의 수해 지역 주민들은 망연자실에서 벗어나 복구 작업에 매진하고 있지만 힘이 부치고 있다. 국민의 따뜻한 손길과 도움이 필요하다. 태풍 ‘갈매기’가 일단 물러갔으나 올해 몇 차례 더 태풍과 장마전선의 영향권에 들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다. 국지성 집중호우 발생 횟수가 느는 추세이므로 향후 ‘물 폭탄’에 대비한 완벽한 수해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난해 태풍 ‘나리’ 등으로 수해를 입은 하천 가운데 아직 복구되지 않은 곳이 전국적으로 상당수다. 마무리되지 않은 수해복구현장을 비롯해 상습침수지, 저지대, 하천범람지역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정부와 지자체가 그간 항구적인 수해복구를 한다며 구두선을 떤 일들이 공염불로 끝난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형식적 방재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안전진단은 더 큰 피해만 초래할 뿐이다.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실효적인 수해방지 및 복구대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