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북(北), 또 하나의 승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과 수 개월 만에 자신의 대북정책을 수정함으로써 그는 앞으로 임기 내내 북한에 이끌려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차라리 남북기본합의서 운운하며 북한 길들이기를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참담한 신세는 면했을 터인데 말이다.

    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북측과 대화를 못해서 안달이 되는가? 야당의 위치에 있을 때는 김정일 세력에 다소 비판적이다가도 권력만 쥐면 밀사를 보내고 정상회담에 매달리며 남북문제의 챔피언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역대 대통령들의 행태가 그랬다. 김대중·노무현의 좌파정권이 그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박정희 등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행세하던 군부 출신 대통령들, 그리고 김영삼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한민국을 이끌며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야 하는 지도자라면 당연히 분단의 한쪽 북한과 어떤 형태로든 접촉을 하고 대화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북한측에 끌려다니며 저들이 하자는 대로 하고 북측의 자그마한 제스처에도 감지덕지하는 패턴으로는 대화의 의미가 없다. 대화의 실효가 없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통행이고 대등한 대화가 아니라 불평한 저자세고 굴욕일 뿐이다. 이제까지 과정이 전부 그랬다.

    우리가 좀 잘살고 여유가 있으니까 저들을 돕는다는 뜻에서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이 맞는다 치자.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수십 년 했으면 이제 북측도 우리에게 어떤 '성의'를 보일 때도 됐다. 그러나 북측과 접촉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제까지 일방적 퍼주기와 전면적 수용 이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햇볕론자들도 햇볕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지 햇볕이 유용하다고는 주장하지 못했다.

    그런 패턴의 반복을 이번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전면 수정에서 뚜렷이 엿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애당초 종래의 대북방식이 한계에 왔으며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니는 식으로는 대화의 실용성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북측이 여러 차례 강조한 6·15 공동선언(김대중)과 10·4 정상선언(노무현)의 이행을 우회해서 기본합의서 쪽으로 접근했고 대북지원과 핵문제를 연계하는 등의 차별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촛불'에 크게 얻어맞고 '이게 아니구나' 하고 전면대화로 후퇴하고 만 꼴이다. 그는 표면상 쇠고기문제로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촛불' 이후 대북 자세를 수정하고 전면 대화를 들고 나온 것은 실상 촛불의 배후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은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북정책을 수정함으로써 '좌파'의 보이지 않는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합참의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발언과 관련, "이제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한 대북지원과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때만 해도 이 대통령은 대북문제에서 기고만장한 듯했다. 그러나 그런 지 불과 서너 달 만에 '기고만장'의 주도권은 북측으로 넘어갔다. 이제 북측은 갈수록 이 대통령과 한국측에 기고만장한 자세로 나올 것이다.

    어쩌면 금강산 관광에 나선 무고한 남쪽의 시민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살한 것과 그 이후 보여준 책임전가의 고답적인 자세는 앞으로 대남문제에서 북측이 얼마나 고자세로 나올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북측이 6자회담에서 한국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미국에 접근하는 태도는 한국과 이 대통령은 안중에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미·북관계가 호전될수록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애당초 북측과의 관계개선을 내세우고 대북지원 등에 적극 나서느니만 못한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했더라면 북측이 굳이 이 대통령을 시험하고 길들이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결국 북측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대들고 까불면 손해나는 쪽이 어느 쪽인지 보여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고 만 셈이다.

    대화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원칙에 따라 대화할 것인지, 그 원칙을 얼마나 고수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대통령의 '전환'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제 북측이 우리와 성실하게 대화하고 남북문제를 함께 호의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망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의 무원칙과 섣부른 자신감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패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