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한미FTA 타결'을 꼽아왔다. 지난해 대선 직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은 한미FTA 비준 동의안 처리를 강력히 요청했고, 노 전 대통령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데 적극 협력할 뜻을 밝혔다. 한미FTA를 찬성하는 학계와 재계에서는 "정파를 초월한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며 두 전·현직 대통령을 높이 샀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20일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나는 일관되게 경기지사 시절부터 비준 문제에 찬성해왔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 때문에 한미FTA 문제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7대 국회 종료를 며칠 앞두고 사실상 처리를 거부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과 대선 후보 경쟁을 벌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금은 야당 대표로 변신한 손 대표를 가리켜 "전형적으로 소신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수차례 치켜세우면서까지 FTA 비준안 처리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한미FTA 비준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추진했던 세력보다 새 정부가 더욱 마음이 급한 '이상한' 양상이 됐다.

    "한미FTA는 우리나라가 선진통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한 말이 아니다. 지난해 한미FTA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가 "가능한 한 빨리 우리 기업과 국민이 한미 FTA로 인한 선발의 이익, 선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한미 FTA는 조속히 발효돼야 한다"며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내용이다.

    한미 FTA는 지난 2003년 8월 국가 중장기적 과제로 미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 추진을 상정한 'FTA 추진 로드맵'을 마련하면서 출발했다. 2005년 한미 양국의 FTA 사전실무점검회의를 거쳐 그해 9월 미국 정부는 한국, 스위스 등 4개국을 FTA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하면서 진전돼 왔다. 2006년 한미FTA 비공식 사전준비회의 이후 2007년 4월까지 9차례에 걸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협상을 벌였으며, 2007년 4월 2일 정부는 '한미FTA 타결'을 공식 선언하고 각 부처별 후속대책 발표가 이어졌다. 한미FTA 비준안이 국회에 제출된 시점은 지난해 9월 7일이다. 상임위원회 상정에 이은 본회의 통과를 남겨놓은 상태다.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어디있나. 국익의 편에 서달라"

    이제 야당이 된 민주당을 향한 이명박 정부의 호소다. 일부 개방 분야의 반발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새 정부가 비준안 처리에 '올인'하는 까닭은 뭘까. 먼저 일자리만들기와 경제살리기를 위해 한미FTA를 하루라도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있다. 정부는 한미FTA 효과로 34만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되며, GDP(국내총생산)는 연 0.6%씩 향후 10년에 걸쳐 6%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한국으로부터 수입이 64억달러 내지 69억달러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유지창 전국은행연합회장 등 국내 주요 재계대표가 참여한 FTA민간대책위원회가 지난 1월 "국제 원자재가격의 급등과 환율 불안, 세계적 지역주의 확산으로 해외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한미FTA 조기 발표를 촉구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 산업에 미칠 긍정적 영향은 예측 가능하다.

    또 한미FTA 이행 법안 의회 통과에 적극적인 미국 부시 행정부의 막판 압박을 위해서도 이번 회기내 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6년간 진행해온 한미FTA 추진 노력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국제관계에서 '팽창'보다 '고립'을 우선해왔으며, 민주당 내에서는 FTA 반대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협상 그대로 매듭지을 수 있는 안전한 시기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우리의 경우 비준안 처리 이후에도 이행 법안을 준비해야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보려면 그만큼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정부측 설명도 타당하게 들린다. 미국은 비준안 처리 절차없이 곧바로 이행법안만 통과하면 발효가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비준안 처리 후에도 다뤄야할 관련 이행법안만 24개다. 이 법안들이 각 상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도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금 시점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서둘러야 내년에 한미FTA에 따른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미FTA 비준 시급성, 당위성 공감하면서도 '국민정서'때문이라니…"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1일 "한미FTA 비준의 시급성,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른바 '국민정서'때문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야당 입장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정부부터 17대 국회내 에 처리해야 한다는 데 여야간 공감이 이뤄졌던 사안"이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국회종료와 함께 자동 폐안돼서 모든 절차와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번 임시국회 소집도 한미FTA 문제를 다루자는 뜻이 아니었느냐"며 "처음부터 다시 추진한다면 미국쪽 상황도 문제지만 시간과 국력 낭비, 그리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지게 되지 않겠느냐. 야당이 역사적 용단을 내린다면 그 공은 우리 정치권 모두의 몫이 될 것"이라고 야당의 협조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