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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2일 혼쭐이 났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패널들의 질문수위가 예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토론 내내 수세적이던 손 대표는 결국 토론 말미 "언론인 앞에서 언론에 도전하는 것이 어리석지만…"이라며 패널들의 다소 거친 공격에 맞대응했다.
손 대표에 대한 포문은 고대영 KBS 논설위원이 열었다. 두 번째로 질문을 한 고 위원은 질문 시작부터 "민주당이 총선에서 내놓은 논리가 견제론인데 지금도 계속 그 얘기만 한다. '(한나라당은) 1% 특권정당이다' '우리는 중산층과 서민정당'이라고 하는데 이게 노무현 정권에서 쓰던 포퓰리즘의 재탕이다"며 "이미 대선에서 썼던 전략을 갖고 총선에서 똑같이 쓰는데 이걸 갖고 국민에게 어떻게 견제할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인지, 선거전략 부재 아니냐"고 물었다.
손 대표는 "야당이 정치권력을 탈환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기득권층, 기업으로 말하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는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것을 포퓰리즘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양 날개의 한 축을 만들 생각을 갖고있다. 물론 선거 전략이 여러 개가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독주 행태에 국민이 불안해 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 날개의 다른 한쪽을 쥐겠습니다'라고 하는 것 이상의 선거 전략이 어디 있겠느냐"고 답했다.
그러자 고 위원은 "지금 답변에서도 그런(포퓰리즘적인)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 한 달인데 어떻게 경제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런 손 대표의 발언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은 곧바로 "대운하를 계속 얘기했는데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시작해 진보신당이 가세하니까 민주당도 발을 담그는 형국이고 발을 담그면서도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있다"면서 "야당 전체를 주도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냐. 진짜 전략적 사고가 부재한 것이냐 아니면 당내 갈등이 있어서냐"고 따졌다.
손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어떻게 경제를 바로 하느냐고 하면 그 말도 맞다"고 말한 뒤 "그러나 이미 이명박 정부는 집권한지 석 달 반이 됐다. 12월 19일 이미 집권한 것이고 인수위원회가 정책을 쏟아내며 나라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한 말이 있다. '내가 당선되면 심리적 효과로 주가가 3000으로 오를 것'이라 했다. 한 사람의 말 실수라고 치부하면 그 뿐이겠지만 '(장관 내정자가) 암 검진을 하러 갔는데 아무 일 없어 오피스텔 하나 선물 받았다'고 말하는 이 정권의 분위기가 문제다. 경제는 심리다. 말 한마디가 심리적 효과로 경제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집권하기 전부터 가볍게 보였다"고 꼬집었다. 대운하에 대한 질문에도 "창조당에서 시작했다는 인식조차 없다. 애초부터 분명히 반대했고 대운하 문제는 오히려 정부 여당이 문제를 잘못 풀어가면서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손 대표가 지역구(서울 종로) 경쟁상대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과의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는 것을 직설적으로 공격한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손 대표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정체성'부분을 문제 삼았다. 전 위원의 '정체성' 공격이 분했는지 손 대표는 질문 주제가 바뀌고 토론이 한참 흐른 뒤 스스로 이 문제를 다시 꺼내 반박했다.
전 위원은 손 대표에게 "(시중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거 한 번 대답해 달라"면서 "손학규의 민주당, 민주당의 손학규는 도대체 뭐냐. 한나라당 입장에선 탈당한 배신자고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선 '한나라당 사람 아닌가'하는 정체성에 혼선을 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손 대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 본인의 정체성이 뭐냐"고 따졌다.
손 대표는 "그 점 충분히 이해한다"며 비교적 차분히 답변했다. 자당의 지지율 부진은 물론 본인의 선거조차 힘든 상황을 손 대표는 "민주당 대표라는 모자가 씌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상화에서 출마 했다면 달라졌을지 모른다"면서도 "열린우리당 후신이라는 모자가 씌워진 손학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했다. '정체성'에 대한 비판에는 "정서적으로 충분히 와 닿지 않는다는 것 인정한다. 그러나 손학규의 개성이 없이 기존의 열우당에 흡수됐다면 손학규의 존재는 필요없다. 손학규가 이 당을 바꿔 나가야 한다"면서 "바뀐 민주당을 하자는 것이고 과거에 안주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게 손학규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안에서 진통이 있고 정체성 혼돈이 아직까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부정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독배를 든다'고 얘기했고 나는 지금 이것을 마시면서 여기서 쓰러질지 모른다"고 맞섰다.
손 대표와 전 위원은 주제가 바뀐 뒤 다시 부딪쳤다. 전 위원은 손 대표에게 "주요 정치인은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고 심판을 받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3개월 후 당권도전은 어떻게 할 것이고 차기 대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미 다른 패널을 통해 나온 질문이었고 손 대표 역시 에둘러 답변을 피해왔는데 전 위원이 좀 더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손 대표도 기분이 언짢았는지 "별로 대답할 게 없는데요"라며 질문을 넘겼다. 전 위원이 손 대표를 보며 답변을 기다리자 손 대표는 거꾸로 전 위원이 이전 질문에서 문제 삼은 '정체성' 부분을 꺼내 반박했다. "아까 전 위원 말에 뒷머리가 캥겨서 다시 말하겠다"며 반격에 나선 손 대표는 "자꾸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정치를 묶고 있다"고 반격한 뒤 "언론에 정중히 요구한다. 과거 이념투쟁을 하던 것을 '좌파정당'이라 비판하면서 (민주당이) 앞으로 나가겠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너희가 안되지 않느냐'고 하면 그게 더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념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부터 틀을 깨고 나가야 쇄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의 공세에 전 위원도 물러서지 않고 "7월에 당권에 나갈 것이냐"며 민감한 질문을 던져 맞섰고 손 대표는 "7월 달에 (전당대회가) 있을지, 언제 있을지… 전당대회 준비를 내가 해야 할 것이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전 위원은 다시 "당권 도전을 위한 준비"냐고 물었고 손 대표는 "도전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런 두 사람의 설전에 참석자들은 웃었고 참석한 민주당 측 관계자들은 "잘한다"며 손 대표를 지원사격 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전 위원은 손 대표의 계속되는 공격적 대응에 "(손 대표의 향후 행보를) 유권자들이 알고 싶어한다"며 답변을 유도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별로 관심 없어할걸요. 내가 한 가지만 말하면 대표를 해보니까 왜 국민이 정치를 싫어하는지 알겠더라. 정치인들만의 게임에 시간이나 정력 소비가 많다. 국민이 대단히 관심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전 위원이) 국민 알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국민은 별 관심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