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뒤 한 달 보름 만에 총선을 맞는다. 1988년 4월 26일 취임 후 두 달 만에 13대 총선을 치른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꼭 20년 만이다. 20년 전 민정당의 노 전 대통령은 3김씨가 주도하던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해 총선 2년 뒤인 90년 3당 합당이란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새 정부와 이 대통령에게는 총선 승리, 그것도 과반수 안정의석 확보는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한 절대 명제다. 87년 직선제로 당선된 노 전 대통령 이후 지난 20 동안 한국 대통령들은 모두 취임 초 과반에 모자란 국회 의석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선진화’와 ‘실용’을 표방한 새 정부가 출범한지 2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민에게는 2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수위 시절의 잇단 정책 실책도 있지만, 최근의 청와대 수석․장관 등 인사잡음 때문이다. '고소영' '강부자'의 유행어로 상징되는 '끼리끼리 인사'는 국가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지고 국정의 ‘총체적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나라당의 공천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반면, 한나라당은 원칙 없는 공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조차 “이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라는데 여러 가지로 걱정하는 국민이 많이 생겼다. 잘할 것이라고 믿지만 요즘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할 정도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대통령은 일절 공천이나 당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국민은 보이지 않는 ‘이(李)의 손’을 알고 있다. 3월 8일자 한 일간 신문 사진기사에 난 '한나라당 대표는 이방호, 강재섭 대표는 핫바지'라는 피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당의 공천은 개혁으로 비춰지는데 한나라당의 공천은 계파간 나눠먹기로 보인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시각은 한나라당의 공천이 앞으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 직계를 제외하고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국민이 영·호남 지역 공천 물갈이를 바라는 것은 그 지역의 여야 다선 중진 의원들이 '공천=당선'인 지역주의 정치에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들이 지역민의 대변자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펴기 보다는 각종 이권 등 추문에 휩싸여도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이 되는 정치현실에 대한 혐오 때문에 신물이 난 때문이다.

    개혁 공천과 물갈이 공천은 동의어가 아니다. 친(親) 이명박계가 이번 공천 기회를 이용해 친(親) 박근혜계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국민은 다선, 고령의원들의 공천배제를 획일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초선, 소장파 의원들이라도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고 부정 비리 등에 연루되어 있으면 친이 친박 관계없이 물갈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당내 역학 구조는 인정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나 강재섭 대표의 실체를 인정하고 친(親)이 일변도의 공천은 중지해야 한다.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 당선가능성을 도외시하고 대통령 사람들만 잔뜩 공천했을 경우 최근 인사 난맥상처럼 야당의 표적 공격대상이 되고 민심이반에 직면할 수 도 있다. 박 전 대표와의 불화 속에선 건강한 당·청 관계 유지나 순탄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당청 회동(당․청 7인 협의체)으로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가 격주로 만나지만, 당의 공심위원들이 당 대표보다는 여권 실세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 정상적인 당이라고 할 수 없다.

    여권 실세들이 박 전 대표 진영이 다수를 차지하는 영남 지역의 물갈이를 위해선 ‘친이계’의 중진 몇 사람을 제물로 낙천시킨다는 복안은 정치적 꼼수에 불과하다. 이미 박 전 대표는 측근인 경기도 용인수지의 한선교, 이천·여주의 이규택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우려했던 정치보복이 시작됐다”며 반발하면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현역 의원이 아니라 언론의 관심대상은 아니었지만 제주시갑 선거구의 5선 현경대 전 의원의 경우도 표적공천 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현 전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시 박 전 대표의 후원자였고, 강재섭 대표 등 한나라당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민정계 중진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던 이재오 전 최고의원 계열의 민중당계가 민정계와 민주계를 이번 공천에서 물갈이 한다는 풍문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공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친이(親李)'계는 공정 공천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과 당원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사람 일색의 물갈이 공천은 국민에게 감동은 커녕 피로감만 줄 것이다. 결과는 총선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친박' 숙청과 강 대표의 위상을 흔드는 공천 결과는 총선에서 여소야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