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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강효상 사회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학풍은 대체로 진보적입니다. 하버드가 위치한 보스턴이 진보적인 미국 민주당의 본거지인 점도 있지만, 진보적인 성향의 교수들이 대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선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전 총장조차 이라크전쟁 지지발언을 했다가 보수우파로 몰렸을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래서 하버드대에선 비교적 인색했습니다. 박정희란 이름 앞에는 늘 ‘독재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하버드의 평가는 최근 들어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중국 때문입니다. 덩샤오핑이 중국을 문화혁명의 혼란에서 구해내 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덩샤오핑과 닮은꼴의 박정희가 재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해 이 대학의 역사학자 에즈라 보겔) 교수는 “박정희가 한국을 경찰국가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분노했지만, 동시에 그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번영된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이미 입증됐듯이, 지도자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습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드와이트 퍼킨스 교수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잘 분석하고 있습니다.
흔히 경제 성장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에 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문화혁명을 주도한 기간과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이끈 기간은 각각 자본과 노동의 투입량이 거의 비슷했음에도 불구, 후자가 전자보다 경제성장률이 2배 이상 높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숨겨진 알파(α), 즉 지도자의 차이입니다. 덩샤오핑의 위대한 점은 중국이 답습해온 소련 공산당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시대흐름에 맞게 서구 자본주의 방식을 도입한 혜안과 용기였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12·19 한국 대통령 선거가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심판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부 좀 과격한 분들은 심판이 아니라 응징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이처럼 푸대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의 확대’라는 시대적 추세를 거슬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분배를 추구하든, 성장을 추구하든 국민의 선의를 믿고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잡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정부’입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큰 정부’를 고집했습니다. ‘작은 정부’가 좋은 이유는 시장에 대한 주요 결정을, 시장을 잘 아는 민간이 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을 잘 모르는 청와대와 관료들이 탁상행정으로 밀어붙이다가 대실패한 사례가 부동산 정책입니다. 수능에 등급제를 도입하면서까지 대학입시에 간섭하다가 교육을 망쳐 놓았습니다.
‘큰 정부’는 그 자체로 비용을 증가시켜 경제에 독(毒)이 됩니다. 또 필연적으로 올린 세금에 대해 국민들은 그 성과를 따집니다. 민생은 안정됐는지, 취업률은 올라갔는지, 범죄율은 내려갔는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금폭탄’을 퍼붓고 각종 규제는 늘렸지만 실적은 오히려 악화된 정부라면, 국민들은 배신감과 분노만 느낄 뿐입니다.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바로 이 교훈이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인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