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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일 사설 '대선 3일전에 나온 대통령의 재수사 지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이명박 후보 강연 동영상이 나온 뒤 정성진 법무장관에게 BBK 사건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하도록 지휘권을 발동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적 의혹 해소와 검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는 이 후보의 특검 수용으로 무용지물이 됐지만 문제점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에 명백한 문제가 드러나면 언제든지 재수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후보 동영상과 똑같은 내용의 이 후보 언론 인터뷰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공개됐다. 이 후보는 2000년 10월 중앙일보 인터뷰, 2000년 11월 일요신문 인터뷰, 2001년 3월호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BBK는 내가 설립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한나라당 당내 경선 때 이미 문제가 됐고, 그 이후엔 여권이 계속 이 문제로 이 후보를 공격해왔다. 이 후보는 “오해”라는 식으로 피해갔지만, 이 후보가 과거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 자체는 공지의 사실처럼 돼 왔다.
물론 검찰의 BBK 수사도 이런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진 뒤에 시작된 것이다. 검찰 수사는 그런 말들이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증거와 부합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검찰은 주식이 이동될 때 오갈 수밖에 없는 자금 흐름에 대한 추적, 5900여 개 컴퓨터 파일의 복원, 이면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라는 전문기관의 감정을 토대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이 법무장관에게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재수사 검토를 지시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현행 헌법과 법률에는 그럴 근거도 없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정부조직법 11조는 ‘대통령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은 이 두 조항에 근거해서 법무부장관에게 ‘재수사 지시 검토’를 지시한 듯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행정부수반으로서 자신의 참모인 법무부장관에게 지시할 수 있는 것은 법무부장관의 권한인 일반 법무 행정에 관한 사항에 한정된다는 게 학계의 다수 의견이다. 구체적 사건의 재수사 여부는 검찰의 사법적 판단. 대통령이 이것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검찰의 독립성을 해치는 위헌적인 조치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이날 ‘재수사 지시’가 아니라 ‘재수사 검토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위헌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현 임채진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스스로 뽑아 불과 20여 일 전에 임명한 사람이다. 이런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실시된 수사 결과에 대해 대통령이 불신을 표시하는 것은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흔든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시대로 검찰이 재수사를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대선 투표일 전에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대통령도 잘 알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검찰의 중립을 최대의 업적인 것처럼 해온 대통령이 사실상 임기 사흘 남겨 놓고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는 투표일 직전에 이 후보 동영상 공개의 파장을 극대화시키는 영향밖에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