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D-30' 감상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적어도 이회창씨가 뛰어들기 전까지는 대선구도가 비교적 분명했다. 이명박 대(對) 정동영, 우파 대 좌파, 보수 대 리버럴, 그리고 영남 대 서부벨트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회창씨의 느닷없는 출마로 대선구도는 불분명해졌다. 따라서 누가 승자로 나설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대선이 정확히 한 달 남았는데 선거전은 지금부터다.

    지금 이 나라에는 아무리 걸출한 지도자가 나와도 한나라당 또는 그 범주의 정당노선을 절대 찍지 않을 좌파 성향이 30% 가까이 된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로 볼 때 범여권 또는 좌파 후보군(群)의 통합지지도가 25~30% 정도 되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 반대로 세상이 두 쪽이 난대도 범여권(또는 통합신당) 쪽을 찍지 않을 우파 성향의 사람도 30%쯤 된다. 결국 열쇠를 쥔 것은 나머지 40%의 유권자이고, 대선은 이들 40%의 얼마를 자기 쪽으로 끌고 오느냐로 판가름 나게끔 돼 있었다.

    이런 판에 이회창씨가 뛰어들었다. 문제는 그가 어느 쪽 성향을 얼마만큼 먹어 갈 것인가다. 우선 그는 이명박씨로는 어딘가 불안하고 부족하다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즉 다른 변수가 없었더라면 ‘부족해도 별수 없지 않으냐’고 체념했을 기존 우파 중 어느 부분과, 이명박·정동영 어느 쪽도 탐탁히 여기지 않고 있는 중도 가운데 보수 성향의 어느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정동영씨를 찍겠다는 사람들 중에서는 장담컨대 한 표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어차피 우파의 누가 나와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에게는 이제부터 온갖 악재(惡材)만 남았다. BBK사건의 전개 여하에 따라서는 지금까지의 그의 지지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지난 연초까지 진행된 자녀들의 위장취업 문제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처신으로는 크게 실망스럽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또 엄포인지 장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권에서 내걸었던 그 ‘한 방’의 향배도 자못 궁금하다. 지금은 겨우 ‘급한 불’은 껐다지만 당내 박근혜 세력과의 ‘휴전’도 지금으로서는 그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거기에 이회창씨가 뛰어들었으니 MB로서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형국이다.

    이에 반해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에게는 ‘좋은 일’만 남았다. 그로서는 이제 깜깜한 터널을 막 빠져나오는 기분일 것이다. 집권 여당의 참담한 실패와 기회주의적 이합집산의 추악상은 점차 유권자에게서 잊혀져 가고 있다. 범여권 후보의 단일화는 노무현 세력의 막판 타협과 DJ의 지원에 힘입어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회창씨의 등장은 가뭄에 단비 격이다. 정동영씨로서는 이제부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남은 것은 위기의식에 빠진 좌파의 단결이고 우파의 분열에서 오는 어부지리뿐이다.

    이회창씨의 경우는 어떤가? 그가 오매불망 바라는 것은 이명박씨가 막판에 크게 흔들려 우파의 덩어리표와 좌파를 싫어하는 중도의 표가 그에게 몰리는 상황일 것이다. 이회창씨는 자신이 아무리 ‘중도’를 자처해도 좌파의 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이명박을 완전히 밟고 우파를 독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모를까, 어쩌면 이명박씨는 이회창씨에게 어설프게 밟히고 이회창씨는 이명박씨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결과로 낙착되기 십상이다. 그가 우파의 영원한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대선에서 이기든가 도중하차하는 양자택일밖에 없다.

    보수·우파 쪽 사람들은 쉽게 얘기한다. 오죽하면 이회창씨가 나왔을까, 이왕 나왔으니 뛸 수 있게 놔둘 것이지 왜 연일 몰아세우는가, 여론조사대로라면 보수 대 보수의 싸움이 될 것이고 차제에 좌파를 3등으로 밀어젖히자 등등….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의 3자 구도가 계속된다면, 그리고 BBK가 대포는 못 돼도 수류탄 정도의 위력이라도 발휘한다면 대선의 상황은 좌파에 유리하게 굴러갈 것이다. 완고한 좌파 30%(단일화의 경우)가 단결하고 야당과 보수 싸움에 식상하고 MB에게 실망한 중간층의 10% 정도가 가세한다면 대선의 승리는 40% 선에서 낙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