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과 같이 못하겠다고 뛰쳐나온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후보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던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대선을 37일 앞둔 12일 다시 손을 잡았다.

    최근까지 통합신당을 '도로 열린우리당'이라고 비판하며 국정실패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던 민주당이었고, 통합신당 내 친노세력은 여전히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국정실패에 대한 사과를 하라' '노 대통령 탄핵 반성하라'는 자신들의 그간 주장은 뒤로한 채 다시 합치기로 합의했다.

    이들이 내세운 명분은 '반한나라당' 전선 형성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지난 4년 간 서로에게 쏟았던 비난을 슬그머니 감춘 채 결합하는 것인 만큼 이들의 명분이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이들의 합당과 후보단일화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 분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측 역시 큰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정 후보가 8석에 불과한 민주당에 당 지분 50%를 넘기면서 까지 합당을 한 것은 범여권의 지지기반인 호남마저 정 후보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30%대에 불과하다. 김대중 노무현 두 후보가 얻었던 지지율에 3분의 1수준이다. 민주당과의 재결합이 호남 표를 의식한 정치행위로 보는 이유다.

    이날 양당의 합당이 상황에 따른 인위적인 합당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통합신당의 정동영 후보와 오충일 대표,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와 박상천 대표 4인은 이날 오전 9시 국회 귀빈식당에서 4인 회동을 열고 합당과 후보단일화 원칙에 합의했는데 만나기 전 이들의 분위기와 합의문을 살펴보면 이들의 재분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당초 9시에 만나기로 한 이들은 15분 늦게 회동을 시작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은 9시 회동 장소에 찾아와 "신당 회의가 늦어져 15분 뒤에 한다"고 말했다. 일부 취재진의 원성이 있자 그는 "저희 사정이 아닙니다"면서 책임을 통합신당에 떠넘겼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쪽은 정 후보와 오 대표였다. 이들은 1분 먼저 도착했고 늦을 일이 없던 이 후보와 박 대표는 2분 늦게 회동장소로 입장했다.

    먼저 도착한 정 후보에게 한 관계자가 "입구에서 기다리시죠"하며 자리를 안내했으나 정 후보는 움직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이 후보와 박 대표를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해 언론에 내보내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양당 실무자들의 주장이 거듭 나왔지만 정 후보와 오 대표는 이 후보와 박 대표가 도착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합의내용 중 '통합 이후 첫 번째 전당대회는 2008년 6월에 한다'고 규정한 부분도 향후 이들의 재분열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총선 뒤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인데 당장 대선 뒤 총선에서의 공천 문제를 두고 양측은 재분열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열린당 세력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시민사회세력이 합쳐 복잡하게 얽혀있는 통합신당에 8석의 민주당이 50%의 지분을 차지하고 들어온 만큼 총선 전 불협화음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당의 재결합에 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마침 이날 언론에는 "호남 지역 국회의원들 하고는 답답해서 일을 못해 먹겠다"는 지난 8일 노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재결합에 부정적인 시각을 밝혀온 만큼 이번 재결합이 노 대통령과의 갈등재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노 대통령 발언에 통합신당 측은 "글쎄… 뭐…"라며 답변을 피했고 민주당 측은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는 분인데 지금 중요한 게 노 대통령 발언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무시했다.

    이날 양측이 합당과 후보단일화에 합의함에 따라 지난 8월 창당된 통합신당은 불과 3개월 만에 사라지게 돼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들은 이날 4인 회동을 통해 '당 대 당' 통합과 후보단일화에 합의했고 당명은 가칭 '통합민주당'으로 정했으며 정책노선은 '질 좋은 경제성장과 서민·중산층 보호를 병행 추진하는 중도개혁주의'로 합의했다. 지도부와 각종 의사결정 기구는 동등한 자격으로 구성하기로 했으며 양당의 현 대표 2인을 공동대표로 임명, 합의제로 운영하며 통합 이후 지도부 선출을 위한 첫 전당대회는 2008년 6월에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