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9일자 사설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이명박 후보에 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출마 선언의 궁극적 책임은 이명박 후보에게 있다. 이명박 후보가 이를 자초했다. 그가 후보로 뽑힌 뒤 과연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했는가. 이명박의 처신은 과거 이회창 후보 때와 다르지 않았다. 50% 넘는 지지율에 도취돼 당선은 따논 당상이라고 스스로들 자만했다. 정권을 이미 차지한 듯 인물을 모으기보다는 떨쳐내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일이 터진 뒤에야 뒤늦게 “국정 파탄 세력의 정권 연장을 도와주는 이적행위” “역사의 순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원인제공자가 스스로임을 먼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이명박 진영이나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사회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 이해관계에 따라 정파가 생기고 정당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란 이런 다양한 세력의 이해를 조정해 끌어가는 통치술이다. 민주정치는 타협과 공존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한 사람, 한 세력의 독주는 독재나 전제정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지금까지 행보에서는 이러한 민주적·통합적 리더십을 볼 수 없었다. 박근혜와의 관계를 보자. 당내 경선에서 1.5%포인트 차이로 어렵게 이겼다. 아니 대의원표로는 오히려 졌다. 그런 상황에서 후보 주변의 사람들이 이미 선거가 끝난 것으로 보고 “당권은 우리 것” “박 전 대표 사람들은 정리해야 한다”면서 거들먹거렸다. 이 후보는 이를 못 본 체 방치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지지세력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보였다면 이회창씨는 출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당의 원로다. 이명박 후보는 당연히 그를 정중하게 모시며 지혜와 경륜을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진심을 보여 주지 못했다. 언론을 의식한 겉핥기 대우만 했다. 입장을 바꾸어 이회창으로선 얼마나 서운했겠는가. 또 그의 정책이나 경륜을 만일 적극 반영했다면 그가 후보로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당 원로의 마음 하나를 못 사면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사겠다고 나설 수 있는가.

    두 번의 대선에서 이회창이 실패한 이유는 오만 때문이었다. 오만했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외면했으며 변화를 갈구하는 국민의 심정을 읽지 못했다. 똑같이 이명박 후보 진영은 50% 지지율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오만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50%가 이명박 후보 개인을 지지해서인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정권교체를 바랐기 때문에 야당 후보를 선택한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을 40일 앞둔 이 시점까지 ‘불안한 후보’라는 레테르를 붙이고 다녀야 할 정도인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겸손해야 한다. 개인이 잘나서가 아니라 시대적 사명을 위해 도구로 쓰임을 받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 몸을 낮추어야 했다.

    우리는 이명박 후보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처신이 나라 전체의 모양을 엉클어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남미의 바나나 리퍼블릭 정치수준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회창씨는 단신으로 뒤늦게 뛰어들었는데도 여론조사에서 2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출마가 명분이 있든 없든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지지하고 있다. 기존의 정당이나 후보가 얼마나 국민의 욕구를 풀어 주지 못했느냐를 명쾌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욕구를 풀어 주지 못하는 한 40일 남은 기간 이변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점을 이명박 후보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