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영봉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시론 <'20대80’사회의 진실을 아는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파레토(Pareto)가 우연히 개미들을 관찰하다가 열심히 일하는 놈은 약 20%뿐이고, 나머지 80%는 그럭저럭 시간만 때우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가 발동한 그는 일 잘하는 20%만 따로 갈라 놓아 보았다. 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열심히 일하더니 곧 그중 80%는 놀기 시작했다. 80% 일 안 하던 집단도 시간이 지나니 20:80의 비율로 일하는 무리가 생겼다.

    유명한 ‘20-80의 법칙’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것은 인간사회에서 변할 수 없는 행동양식과 계층구조를 보여주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착취함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생산 엘리트가 일을 못하면 전 사회가 불행해짐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파레토가 풍년이 났을 때 마을에 내려가 보니 풍년 덕에 곡식을 그득히 채운 집은 20% 정도였고 나머지 80%는 그럭저럭 형편이 나아졌을 뿐이었다. 흉년이 났을 때도 80%는 굶을 지경이 됐지만 20% 농가는 곡식을 여유 있게 추수해 놓고 있었다. 이 20%가 저축한 양식 덕에 나머지 사람들은 겨울을 굶어 죽지 않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파 집단들은 이 법칙을 민중을 선동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활용한다. 정동영 통합신당 후보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경제정책을 “20%는 잘살고 80%는 버려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 자본주의”라고 질타했다. 상위 20%를 계속 잘라 버리고 쫓아내는 사회를 가상(假想)해 보자. 나머지 80% 중 또 ‘잘사는 20%’가 생길 것이다. 이들을 잘라내고 또 잘라낸다면 결국 하위 80%만이 80, 64, 51.2로 경제규모를 자꾸 축소재생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100%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음은 역사가 가르쳐 준다. 이렇게 가난해지는 고통을 상위 20%보다 하위 80%가 더 겪게 된다는 사실은 참여정부 아래서 늘어난 서민의 고통이 잘 말해 준다.

    이명박 후보의 정책은 친(親)시장, 친기업으로 알려졌다. 이런 자본주의는 상위 20%가 놀면서 80%가 생산한 바를 약탈하는 사회인가. 정 후보의 극단적 반(反)자본주의 사상도 문제지만 더 고약한 것이 국민을 20% 집단과 80% 집단으로 나누어 적대(敵對)시키려는 태도다. 과거 대통령선거전이 이념 싸움으로 지저분해진 적은 있지만 이런 노골적 언어를 구사해서 국민의 분열을 부채질하는 후보가 있었는가.

    근대 서구 역사를 보면 지성(知性)이 항상 문명을 이끌어 왔다. 한 국가의 지성이 우대를 받으면 국민 모두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해서 국가의 부(富), 시민의 수준과 국가의 품격을 올리고, 지구촌의 20% 엘리트 국가와 국민으로 부상하는 것이다. 반대로 반지성(反知性) 집단이 집권하면 예외 없이 국민을 세계의 하류집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이런 반지성 정권의 특징은 국민의 이성을 무력화시키는 온갖 조작을 거침없이 동원하는 것이다. 이벤트, 슬로건, ‘20-80 선동’ 같은 수법이다.

    그러나 이런 구호에 80% 국민은 쉽게 빠질 수 있다. 포퓰리스트(대중 영합주의자) 집단은 “20%만 일류대학에 가지 못하게 하자”, “부자들에게 중과세해 80%에게 나누어 주자”, “정부가 빚을 내서 80%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 따위의 구호로 민중을 유인한다. 그러나 이것이 시민 기업 노동자 정치가 시민단체 등 나라의 모든 집단에게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키고, 경쟁과 근로의 의욕을 말살시킴은 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에게 달콤한 마약을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포퓰리스트들은 또한 우매한 백성일수록 다루기 쉽기 때문에 정론을 펴는 언론을 적대하기 마련이다.

    얼마 전 내한한 벤 베르바옌((Verwaayen) 브리티시 텔레컴그룹 회장이 한 조찬강연에서 “한국의 한 대통령후보가 주장하는 정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 그런 용어가 있는가? 그렇다면 영국의 조선업을 모두 약탈해 간 한국이 바로 정글 자본주의”라고 대답했다. 지구촌 굴지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되려 한다는 한국에서 이런 용어가 창조되는 것 자체가 실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