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를 얻는 일은 정치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선거 때 신뢰는 유권자의 주요한 선택기준이 된다. 대선 후보가 매일 내놓는 모든 것은 모두 국민과의 약속이다. 언행 뿐 아니라 매일 쏟아내는 언론 보도자료 역시 그렇다. 후보들은 이런 것들로 자신을 유권자에게 보여줘 신뢰를 얻고 지지를 호소한다. 정당 역시 후보의 이런 일을 뒷받침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 후보에 대한 국민 신뢰가 쌓이고 지지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정동영 대통령 후보는 경선승리로 지지율이 크게 올랐지만 더 이상의 상승세를 타지 못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빠른 시일 내에 20%대에 안착하지 못하면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패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 후보 측은 조만간 20%선 돌파가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22일 정 후보는 이런 자신감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통합신당에서 사전에 공개한 이날 정 후보의 일정은 오전 8시 오충일 대표가 주재하는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고 10시 조계사를 찾아 조계종 총무원장을 면담한 뒤 11시 30분 전국노인위원회 회의에 들어가도록 돼 있었다. 12시 15분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오찬을 한 뒤 오후 3시에는 23일 MBC TV를 통해 방영될 대통령 후보 정강정책 녹화 연설이 계획돼 있고, 5시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면담하면서 하루일과를 마칠 계획을 잡았다. 

    정 후보 일정은 당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국민들에 공개된다. 그런데 정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확대간부회의와 11시 30분에 예정됐던 전국노인위원회 회의에 불참했다. 8시 확대간부회의 불참은 사전에 통보도 없었다. 정 후보 측에 따르면 8시 확대간부회의에는 "특별한 의제가 없어서 대신 선거기획단장과 대변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대신 그 시간에 정 후보는 오후에 있을 정강정책 연설을 준비했다고 한다. 정 후보 측은 "오늘 MBC 정강정책 녹화연설이 있는데 몇십억짜리 연설이라 그 준비를 하려고 (회의는) 불참했다"고 말했다.

    당은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는 회의 전 '정동영 대통령 당선기원 카운트다운 오프닝'행사를 열었다. 정 후보가 이날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당 홍보국에서 준비한 행사인데 정작 정 후보가 불참해 회의 전 머쓱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우리가 이긴다"는 홍보카피를 외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당 부대변인조차 무슨 행사인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엉성하게 끝났고 회의장 주변의 반응도 냉담했다. 준비 미숙의 원인도 크지만 무엇보다 정 후보의 불참이 이날 행사를 초라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11시 30분 전국 노인위원회 회의는 "조계사에서 시간이 지연돼 참석하지 못했다"(김현미 대변인)고 해명했다. 정 후보 측은 "(전국노인회 회의 장소인) 영등포를 들렀다 가면 (12시 15분에 있을) 강금실 전 장관과의 오찬에 늦기 때문"이라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강 전 장관과의 점심 식사를 위해 노인회 일정을 취소한 셈인데 당내에서는 2004년 4·15총선 전 '노인폄하'발언으로 혼쭐이 났던 정 후보로선 노인회 회의에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행사의 경중을 떠나 정 후보는 이날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긴 셈이다. 정 후보와 통합신당은 왜 지지율이 오르지 않나 고민할 게 아니라 우선 '어떻게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부터 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