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 사설 <'개인적 원한'을 '대통령 권력'으로 풀고 있는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인 2003년 3월 청와대 워크숍에서 “언론은 통제되지 않은 권력, 검증받지 않은 권력,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며 “적당히 소주 한 잔 먹고 우리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내자”는 말로 처음 언론과의 관계를 맺었다. 2003년 8월 총리와 장·차관급 130명을 모아놓고는 “기자들에게 술·밥 사봐야 득 될 것 없다”고 했다.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도 언론에 이런 첫 인사를 건네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건 상식인의 예의에 어긋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언론의 5년은 이렇게 시작돼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대통령은 2004년 수도 이전 반대 여론이 커지자 이를 “광화문에 거대 빌딩을 가진 신문사들”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수도 이전을 위헌이라고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라는 편법으로 비켜나갔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 초부터 언론을 ‘불량상품’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곧이어 “몇몇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사를 담합한다”고 하더니 급기야 기자들을 정부 청사에서 쫓아내는 일을 벌이고 있다.

    언론은 원래 권력자에게 밉고 싫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 4년을 지낸 뒤엔 “신문이라는 대포가 마음 내키는 대로 포탄을 장전해 우리에게 퍼부었다”고 비난했다. 1972년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는 물러나는 날 관저 회견장에서 “오늘은 자유로운 날, 그간 너무 시달렸다. 신문기자들은 나가 달라”고 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회견장에서 TV 카메라만을 앞에 두고 퇴임사를 읽었다.

    그런데도 민주정부의 지도자들이 함부로 언론을 몰아세우지 않는 것은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대행하는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나 종신 집권을 꿈꾸며 비판적 방송사를 폐쇄하는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언론의 본업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이 본업에 충실하면 할수록 권력자는 언론을 귀찮아하는 것이다. 권력이 반기는 언론은 권력과 정부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써주는 언론이다. 그러나 그런 언론은 권력의 환영을 받는 대가로 국민에게 외면당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을 가리켜 ‘선출되지 않은,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언론의 진실한 힘은 국민이 궁금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을 국민을 대신해 확인해주고 국민이 소리치고 싶어하는 것을 국민 대신 소리쳐주는, 독자와의 일체감에서 비롯된다는 민주국가에서 국민과 언론과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이 지난 5년 동안 대통령의 언동을 비판한 언론에 해온 막말과 폭행은 결국 국민에 대한 욕설이고 폭행이었다는 말이다.

    언론이 대통령에게 싫은 소리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의 말과 행동과 처신이 나라의 자존심을 해치고 국민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흔들 위험이 크기에 한 말들이었다. 대통령은 2003년 처음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일본은 (한국이 우호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첫 번째 나라”라 하고 1년 뒤엔 “내 임기 중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더니 2006년엔 “일본의 물리적 도발에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전쟁도 불사할 듯 나섰다. 대미관계, 대일관계 등 대한민국의 핵심 외교 사안에 대해 이렇게 널뛰듯 하는 대통령에게 불안해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고 이런 국민의 뜻을 언론이 어떻게 반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지난 6월 “한나라당 집권하면 끔찍하다” 같은 발언들로 선관위로부터 정치중립 위반 결정을 받았다. 대통령은 곧바로 ‘자연인 노무현’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런 대통령에게 어떻게 언론이 침묵할 수 있었겠는가.

    2003년 8월 청와대는 양길승 제1부속실장이 경찰의 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향응을 받은 파문이 터지자 1차 조사를 한 뒤 별일 아니라며 주의만 주고 끝내고 말았다. 꼭 4년이 흐른 지난 8월 청와대는 변양균 정책실장의 권력남용 의혹에 대한 첫 보도가 나오자마자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통령은 ‘깜도 안 되는 사건’으로 언론이 시끄럽게 한다고 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브리핑과 변명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언론이 권력의 브리핑만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이 두 사건은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지금 권력에 굶주린 하수인 몇몇을 앞세워 기자들을 청사에서 몰아내며 권력의 브리핑만 받아쓰라고 강요하고 있다. ‘자연인 노무현씨’의 사적 증오와 원한을 ‘대통령 노무현’의 권력을 빌려 위헌적 방법으로 풀고 있다. 일종의 ‘정신적 강박증’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