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란에 실린 이 신문 강효상 사회부장의 글<김대업 학습효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Wag the Dog(왝 더 독)’이란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습니다. 배리 레빈슨 감독이 1997년 제작한 이 영화는 소녀추행사건에 휘말린 미국 대통령이 여론의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알바니아 침공을 조작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말로는 “꼬리가 개를 흔든다”, 즉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됐다는 뜻입니다.요즘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캠프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차명재산 은닉의혹 등을 둘러싼 검증공방이 주민등록초본 유출파문 등 불법자료수집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죠. 열린우리당도 1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이 ‘Wag the Dog’ 을 언급하면서, 검증논란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반인들 중에도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의구현과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다소 법을 어기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생각들입니다. 실체적 진실규명이 적법(適法) 절차나 법적 안정성보다 앞선다는 주장입니다.
반대로 “정의를 세우려면 깨끗한 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명분이 훌륭하더라도 다수가 동의한 법을 어기는 것을 용인할 경우 사회공통의 질서가 붕괴된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체적 진실규명이 먼저냐, 적법절차가 먼저냐 하는 문제는 문명사회의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세계적인 법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가치에 따라 양자 간의 경중(輕重)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2007년 오늘날의 시대적 가치가 차츰 적법절차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김대업’이란 ‘의인’을 만났습니다. 김씨는 당시 박영관 부장검사라는 ‘정치 검사’의 엄호를 받으며 조작된 증거들로 세상을 속였고, 결국 목적하는 바를 얻었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고, 잠적한 김씨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인 2003년 1월에야 구속됐습니다. 당시 김씨는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당선이 정의(正義)에 부합한다고 확신했는지도 모릅니다. 박영관 부장검사는 2006년 초 차관급인 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대통령 선거를 맞은 지금, 많은 사람들은 ‘김대업’이란 이름을 떠올리며 “김대업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 사건을 통해 “어떤 정의를 앞세우더라도 반칙과 공작정치만은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지금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초조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테러까지 당해가면서 제1야당을 살려놓았는데 ‘부패한’ 이명박 후보가 앞서가고 있다니 이것이 정의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집권여당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충분히 이루어져야 하고, 각 후보들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자발적으로 공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 후보나 이 후보, 그리고 집권여당 모두 명심할 것은 또다시 ‘김대업식 공작정치’로는 국민들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선거란 최선의 후보를 뽑는 것이라기보다는 최악의 후보를 낙선시키는 과정이란 말도 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은 ‘누가 가장 훌륭한 후보인가’를 살펴보는 동시에 ‘누가 게임의 룰을 공정하게 지키느냐’에도 관심이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김대업 학습효과’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